“물난리 매뉴얼? 그런게 있나요”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폭우가 두려운 공사현장서울 등 중부지방에서 본격적인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서 비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공사현장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2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재개발 지역 공사장. 홍진환 기자
폭우가 두려운 공사현장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 본격적인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서 비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공사현장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2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재개발 지역 공사장. 홍진환 기자
침수예상지 1081곳중 275곳 ‘재해지도’ 없어
홍수지도는 낙동강뿐… 주민 교육도 지지부진

“설마 우리 집이 물에 잠길 줄은 몰랐는데….”

2일 전국이 다시 장마권에 들어가면서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이날 오전 10시경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건물 지하 개인 병원에 100mm가량 물이 들어찼다. 오전 3시에는 기습 폭우로 중랑구 면목동의 한 가정집이 물에 잠겨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주민들은 “침수가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고 밝혔다.

○ “주민들 침수정보 노출 원치 않아”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시 시민들에게 침수예상지역, 대피장소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제작된 ‘재해정보지도’나 ‘홍수위험지도’는 지역마다 편차가 크거나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아일보가 2일 소방방재청의 ‘재해지도현황’(올 5월 말 기준)을 분석한 결과 전국의 침수예상지역 1081곳 중 275곳은 ‘재해정보지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침수 가능성이 높은 4곳 중 1곳은 재해 대응 매뉴얼이 없다는 것. ‘재해정보지도’는 침수예상지역과 재해 발생 시 대피요령, 경로, 장소 등을 표시해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피난용, 교육용 등으로 활용하는 지도다. 지방자치단체가 관내 침수예상지역을 지정·제작하고 소방방재청에서 관리한다.

시군별로 보면 전남은 침수예상지역 47곳 중 2곳(4.2%)에만 재해정보지도가 있다. 광주는 11곳 중 1곳(9.0%), 전북은 155곳 중 22곳(14.1%)에만 재해정보지도가 있다. 서울지역에는 침수예상지역이 서초구 한 군데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울의 재해정보지도는 전무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측은 “서울시는 제방, 배수, 펌프 시설 등 시스템이 잘 갖춰져 굳이 ‘재해정보지도’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이를 알릴 필요가 없다”며 “주민들도 ‘집값이 떨어진다’며 거주지역의 침수예상 정보 등이 노출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서울 내 시스템이 잘돼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한강을 끼고 있어 어디든 위험할 수 있다. 중랑천 인근 등 침수에 취약한 곳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집중호우에 의한 하천범람 예상 구역을 표시한 ‘홍수위험지도’도 5대 강 중 1개 강 권역만 존재했다. 홍수위험지도를 제작 관리하는 한강홍수통제소(국토해양부 산하)에 따르면 현재 낙동강 지역만 홍수위험지도가 제작돼 지역 공무원들에게 배포된 상태다. 한강 영산강 섬진강 금강 지역 홍수위험지도는 제작 중이거나 향후 제작된다.

○ 전문가 “재해대응 매뉴얼 제공해야”

기상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화되는 과정에서 최근 10년간 연평균 강수량이 평년 대비 약 9.1% 증가했고 하루 80mm 이상 폭우빈도도 1970년대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재해에 대한 각종 정보, 대응매뉴얼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작업은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연재해가 설마 나에게 일어날까’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다”며 “도시의 경우도 지하도로 등 지하구조물이 많아 이런 곳에 침수가 되면 큰 피해가 예상되므로 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미리미리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 완성된 재해정보지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다. 충남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충남도는 인터넷을 통해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재해지도를 제공하고 일부 지자체의 경우도 종이로 인쇄해 나눠주고 있지만 주민들이 제대로 활용하도록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홍수위험지도 역시 지역 공무원에게만 제공될 뿐 일반인이 이용하려면 직접 한강홍수통제소나 지자체를 방문해 열람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 각종 재해 관련 정보는 시민들에게 철저히 공개된다. 윤세의 경기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미국 일본 등은 인터넷을 통해 모든 재해 정보가 공개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정보를 알고 안전시스템 강화를 요구하게 되며 해당 지역의 안전문제도 해결되면서 집값도 오르는 구조”라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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