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용석]이통 3사의 속보이는 ‘규제 요청’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이동통신 업체인 KT, SK텔레콤, LG텔레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1일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최시중 위원장을 만나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냈다. 정부의 규제를 자발적으로 요청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정일재 LG텔레콤 사장이 “최근 시장이 혼탁해 휴대전화 보조금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사업자 자율이 어려우니 (정부가) 약관에 의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운을 띄웠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오늘부터 과열경쟁 하지 말자. 방통위는 이 합의를 깨는 곳에 페널티를 줘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석채 KT 회장도 “투자액보다 마케팅비를 더 많이 쓰는 업체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기업이 정부에 규제와 처벌을 스스로 요청하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더구나 통신업체들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규제를 없애달라고 요구했다. 매년 수십 억∼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물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규제는 작년 4월 완전히 폐지됐다.

통신사들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은 왜일까. 최근 세 업체 사이에 가입자 빼앗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도한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출혈이 커졌기 때문이다. 통신업체들은 요금 인하나 서비스 차별화, 품질 높이기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포화된 시장에서 보조금을 지급해 경쟁업체의 가입자를 빼앗아 오는 단기적인 경쟁에만 몰입했다. 소비자들이 ‘가입 회사를 자주 바꾸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시장의 신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통신업체들은 한 해에 1조 원이 넘는 돈을 보조금에 쏟아 부어 수익성이 악화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됐다.

CEO들이 ‘고백’한 대로 보조금 경쟁은 소모적이다. 한 해에 1000만 대의 멀쩡한 휴대전화가 버려지니 경제에도 좋지 않다. 그렇다면 통신업체들은 다른 경쟁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요금을 낮추는 경쟁에는 선뜻 손을 대지 못한다. 한 사람당 기본료를 1000원씩만 깎아 줘도 세 업체가 연간 5600억 원의 매출 감소를 겪기 때문이다. 서비스 경쟁도 과감한 선투자를 단행해야 하므로 망설인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업체들이 은근슬쩍 규제에 기대려는 행동은 도덕적 해이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격하게 보면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담합을 해야 하는데 우리끼리는 안 되니 정부가 조정을 해 달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지출할 돈을 줄이고 싶다면 합리적인 선에서 스스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정부가 나서서 수익성을 보장해 주도록 규제에 기대려는 것은 시장경쟁의 질서를 해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위험한 생각이다.

김용석 산업부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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