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에게 말 걸기 20선]<17>과학도 풀지 못한 인류 문명의 비밀

  • 입력 2009년 7월 3일 02시 59분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 했을 법한 물음들을 통해 민족과 신화, 종교, 풍습 등에 숨겨진 인류 정신의 원형을 탐구한다. 미케네 문명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스핑크스는 누가 만들었는지, 노아의 방주는 어디에 있는지, 아마존 여인국은 정말로 존재했는지 등 세계 곳곳에 남은 다채로운 고고학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다.”》

해석을 허락하지 않은 유적들

고고학은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백만 년 전 인류의 흔적을 추적한다. 고고학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신화와 전설 등의 단서를 좇아 이뤄낸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발굴 이후 미궁에 빠져 있는 유물과 유적도 존재한다. 역사와 문화 관련 책을 내온 저자들은 아직까지 온전한 해석이 나오지 않고 있는 흥미로운 고고학 유물과 유적을 소개한다.

1876년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의 발견으로 실체를 드러낸 미케네 문명의 멸망 이유는 수수께끼다. 미케네는 그리스인이 에게 해(海) 군도에 세운 노예제 국가들 중 가장 강대했던 도시. 유물 조사 결과 기원전 1400년경부터 200여 년 동안 지중해 연안 도시들과 교류하며 번성했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스군이 10년 동안 인력과 물자를 쏟아 붓고도 이렇다 할 전리품을 얻지 못한 트로이전쟁의 후유증 때문이라는 설, 북방 유목민족인 도리아인의 침입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설, 몇 년간 계속된 가뭄과 기근으로 폭동이 발생해 쇠락했다는 설 등이 경쟁하고 있지만 고증자료는 미약하다.

1722년 네덜란드 항해가인 로헤베인이 칠레 해역에서 부활절에 발견했다고 하는 이스터 섬. 이 섬에서 발견된 1000여 개의 거대한 석상은 그동안 수많은 고고학자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 유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칠레 해안에서 3700km 떨어져 있고 163k㎡에 불과한 작은 섬에 50∼90t의 석상이 무더기로 들어선 이유, 무거운 석상을 운반한 방식 등을 밝혀줄 단서는 원주민이 ‘롱고롱고’라고 부르는 목판 그림문자뿐. 하지만 목판의 절반 이상이 약탈 등으로 사라진 데다 그림문자는 원주민 문자와도 전혀 달라 아직까지 어떤 학자도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섬에서 유일하게 이 문자를 읽을 수 있었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 방법을 전수하기 전 병에 걸려 숨졌다는 전설만이 남아 있다.

중국이 심혈을 기울여 찾고 있는 50만 년 전 베이징원인(北京原人) 두개골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학계의 대표적인 미스터리다. 1929년 베이징 교외 저우커우뎬(周口店)의 룽구(龍骨) 산 동굴에서 발굴된 베이징원인 두개골은 당시까지 가장 오래된 인류의 흔적이었던 네안데르탈인보다 수십만 년이나 앞선 유골이었다. 1941년 베이징원인을 선조로 여긴 일본이 탐을 낸다는 사실을 알아챈 중국은 미국과 종전 후 반환 조건으로 이 유물을 뉴욕 자연사박물관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초 톈진(天津)에서 수송을 기다리던 베이징원인 두개골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당국이 ‘잃어버린 조상’을 찾으려고 나섰지만 허사였다. 중국은 당시 톈진의 미군기지 지하실에 있다가 건물 붕괴로 파묻혔거나 미국이나 일본 정부가 입수한 뒤 발뺌하고 있을 가능성 등을 의심하고 있지만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남미에서 발견된 피라미드가 이집트 피라미드를 모방한 건축물인지, 영국 윌트셔 주의 돌기둥 스톤헨지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 켜켜이 쌓인 트로이 유적층 가운데 트로이전쟁 유적은 어느 층인지 등을 둘러싼 고고학계의 논란과 과제도 소개한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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