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유전개발 빗장 풀었지만…

  • 입력 2009년 7월 2일 02시 59분


국제입찰 8곳 중 7곳 유찰
석유메이저 “수익 너무 낮아”

이라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지 37년 만에 해외 기업에 유전개발의 빗장을 열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가 내건 까다로운 조건과 낮은 수익성 때문에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잇달아 입찰을 포기하면서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등 돌린 석유메이저

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라크가 실시한 8곳의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 국제입찰에서 남(南)루메일라 한 곳만 입찰에 성공했다. 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 중국 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 컨소시엄에 낙찰됐다.

미군의 이라크 내 주요도시 전면 철수일(6월30일)에 진행된 이번 입찰은 엑손모빌과 로열더치셸, 코노코필립스 등 세계 50여개 석유회사가 달려들면서 높은 경쟁을 예고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이라크 정부가 제시한 개발 수수료가 지나치게 낮다고 판단한 석유회사들이 잇달아 입찰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

75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서(西)쿠르나 입찰의 경우 석유회사들은 예상량을 초과하는 석유생산에 대해 배럴당 19.30달러를 요구한 반면 이라크 정부는 그 10분의 1 수준인 1.9달러를 제시했다. 유일하게 낙찰된 BP와 CNPC 컨소시엄도 당초 제시했던 배럴당 3.99달러보다 절반 가까이 낮은 2달러까지 수수료를 낮춰야 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수익이 안 나도 장기적 관점에서 유전 개발권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아니었다면 남 루메일라 유전마저 낙찰에 실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밖에 △석유개발 관련 규제가 까다로운 점 △이라크내 유전개발 및 투자, 수익분배 등을 규정한 '석유법안'이 국회에서 표류 중인 점 △석유개발을 둘러싼 의사결정권이 모호한 점 등도 글로벌 기업이 외면한 배경이다.

●중국의 발 빠른 행보

유전개발을 둘러싼 이런 문제는 이라크의 경제재건 사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이번에 유찰된 7개 개발 예정지를 포한해 십여 개 유전 및 가스전에 대한 추가 입찰을 하반기에 실시할 계획이다.

입찰에서 등을 돌리긴 했지만 글로벌 석유회사들에 이라크 유전은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다. 이라크의 총 원유매장량은 1150억 배럴. 하루 평균 생산량은 240만 배럴에 이르는 세계 3위의 원유대국이다. 매장량은 더 많아도 해외 기업에 폐쇄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 비해 글로벌 회사가 참여할 수 있는 유전개발 범위도 훨씬 넓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발 빠른 행보가 눈에 띈다. 중국은 CNPC 외에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SINOPEC) 같은 국영회사를 앞세워 이번 입찰에 적극 뛰어들었다. 앞서 지난달 말에는 이라크 쿠르드 지역 등지에서 활동해온 스위스의 석유회사 아닥스 페트롤리엄을 인수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2위 석유 소비국으로 뛰어오른 중국이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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