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짜리 이 국산펜, 일제펜 몰아내고 고시촌 일제 접수

  • 입력 2009년 7월 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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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mm 마하펜 고시생들 입소문 타고 품귀현상

대학생 김모(23·여) 씨는 지난달 중순 행정고시 2차 시험을 앞둔 남자 친구에게 모닝글로리 마하펜을 선물하려고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 문방구를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허탕을 쳤다. 결국 김 씨가 마하펜을 구한 곳은 신림동에서 한참 떨어진 성북구 길음동이었다. 김 씨는 “온라인으로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시험을 이틀 앞두고 겨우 펜을 구했다”고 말했다.

사법시험,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등 국가고시 2차 시험이 몰린 6월 한 달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봉천동 일대 문방구에서는 ‘마하펜’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봉천동 K문구 주인은 “2차 시험은 주관식이라 시험을 앞두고 여분의 펜을 사두려는 고시생들 때문에 진열대에 놓는 즉시 동이 났다”고 말했다.

○ ‘펜의 고수’ 고시생들도 인정

고시생들은 유독 펜에 민감하다. 사시 2차처럼 주관식 시험을 볼 때면 하루 종일 답안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 고시생들은 선이 가늘면서 필기감이 뛰어난 일본 펜을 좋아한다. ‘경제학은 사라사, 법은 에너겔’이 불문율처럼 통용될 정도다. 도표나 그래프가 많은 경제학은 깔끔하게 써지는 제브라의 사라사 펜이, 글씨를 많이 써야 하는 사시나 행시에서는 부드럽게 써지는 펜탈의 에너겔 펜이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해 3월 출시된 모닝글로리의 마하펜이 ‘고시계’의 필기구 상식을 하루아침에 뒤바꾸어 놓았다. ‘펜 감별의 고수(高手)’라 할 수 있는 고시생들이 인정한 마하펜의 강점은 부드러운 필기감과 경제성이다. 0.4mm 수성펜인 마하펜은 기존 수성펜보다 번짐 효과가 적으면서 잉크가 부드럽게 나온다. 글씨를 많이 쓰는 고시생들은 평균 3일에 한 개꼴로 펜을 소모하는데 마하펜은 일주일을 써도 너끈할 정도로 경제성이 뛰어나다. 한 자루에 1000원인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품질은 일본 제품에 뒤지지 않다 보니 고시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돌았다.

○ 국산 펜의 자존심을 세우다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반응에 본사는 주문 물량을 대느라 눈코 뜰 새 없다. 마하펜은 출시 일주일 만에 15만 자루가 모두 판매됐다. 8월 말까지 110만 자루 이상이 팔릴 것으로 모닝글로리 측은 내다본다. 필기구 시장에서 연간 100만 자루 이상 팔리면 ‘대박 상품’이라고 본다. 모닝글로리는 마하펜 덕분에 올해 예상 매출도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430억 원으로 잡았다. 기업 특판 주문도 벌써 20만 자루가 밀려 있는 상황이다.

사실 마하펜은 2년여의 연구개발(R&D) 끝에 나온 ‘작품’이다. 1000원짜리 펜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매출 400억 원 남짓한 중소기업으로서는 거액인 5억 원을 투자했다. 1988년 문구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문구점이나 대형서점의 문구코너 등은 일본, 독일 등 해외 제품이 석권한 지 오래다. 더군다나 노트북PC 사용이 일반화되고 중국산 저가 펜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국내 펜 업체는 설 자리가 없었다.

마하펜을 개발한 최정헌 모닝글로리 이노피스팀 팀장은 “품질과 가격을 모두 만족시킨다면 외제 필기구 일색인 국내 필기구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지금은 검은색 한 종류뿐이지만 색상도 늘리고 여성들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슬림한(가는) 디자인의 제품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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