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정규직 550만 명을 언제까지 우롱할 건가

  • 입력 2009년 7월 2일 02시 59분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현행법이 어제부터 시행되면서 고용기간 2년을 채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7월 한 달 동안에만 2만∼3만 명, 앞으로 1년 동안 40만∼70만 명이 일자리를 잃는 해고대란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여건이 안 되는 중소기업들은 숙련된 인력을 내보내고 다시 사람을 뽑느라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노동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어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개정안을 상정하고 ‘여야 6인 회담’을 제의했으나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하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던 정당과 정치인들이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인 550만(노동부 추계) 비정규직 근로자를 실직과 불안의 고통 속으로 내몰고 있다.

비정규직 실업대란은 2006년 11월 비정규직법 제정 당시부터 예상된 일이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해고하면 생산성 저하와 노무관리 비용 증가를 초래하기 때문에 사용기간 2년을 채우더라도 해고할 우려가 적다’며 기업 현장과 경제 현실을 무시하고 입법을 밀어붙였다. 그 후 비정규직이 계속 늘어나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해고 대란이 불가피해졌는데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도 집권 후 노동계 눈치를 보다가 올 4월에야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충분한 협상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해고법’으로 불릴 정도로 비현실적인 법이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지적처럼 노무현 정부와 당시 여당이 “우격다짐으로 만든 법”이다. 민주당은 2년 전에 큰 잘못을 저질러놓고 그것을 시정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2년 半전 立法부터 무책임의 극치였다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민주당)은 노동계의 반대를 구실 삼아 개정안의 상임위 상정을 거부해 여야 협상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추 위원장의 무책임한 독단에 대해 오죽하면 민주당 내에서 “개인의 정치적 행동”이란 비판이 나올까. 추 위원장은 그제 “한나라당이 국회의장에게 비정규직법 개정안의 직권상정을 요청한다면 1996년에 서민 상대로 노동법을 날치기하다가 식물정권이 돼버린 YS(김영삼) 정권이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법 개정을 끝까지 막아 날치기를 유도해 현 정권을 식물정권으로 만들겠다는 속셈이란 말인가. 추 위원장이 언급한 13년 전의 노동법 사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후 세계 수준에 맞도록 정리해고 등을 인정하는 노동관계법 개정이 불가피했다. 당시 야당과 노동계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친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은 그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노동법 파동이 계속되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돼 해외신인도가 급락한 것도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분석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외환위기 일부 책임론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는 민주당이 비정규직법 개정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당의 정체성에 역행하는 행태다. 현행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바로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라는 서민과 중산층이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편이라는 민주당이 법 개정 지연에 따른 중소기업의 피해를 모른 척한다면 자기모순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양대 노총의 눈치를 보느라 550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희생시키려는 것이다.

법 시행 즉각 유예하고 근본적 해법 찾아야

여야는 당장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실직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하고 근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비정규직 사태는 1987년 이후 노조의 강성투쟁 정치투쟁으로 경직된 노동시장에 뿌리가 있다. 정규직 고용과 해고가 어려워진 기업들은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했다. 정규직 노동시장에 대한 개혁 없이는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유럽 각국은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취하면서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선진국 중 비정규직 사용을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는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실직보다는 아무 일이라도 하는 게 낫다”면서 비정규직의 사용요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원하는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유지하면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일이다. 비정규직의 기간 제한을 폐지하고 당사자들의 자율적인 계약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비정규직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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