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6명에게 生命주고 떠난 장만기 씨

  • 입력 2009년 7월 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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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몸에서 남편의 심장이 뛰고 남편의 눈이 세상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합니다.”

곽선영 씨(가명)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장만기 씨)을 생각하며 눈물을 짓다가도 그의 심장 간 신장 각막으로 6명이 건강을 되찾은 사실을 떠올리면 힘이 솟는다. 곽 씨는 “남편이 뇌사 판정을 받았지만 장기기증 결정을 못하고 일주일을 머뭇거리는 사이에 폐와 췌장이 상해 기증을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 경영관리팀 과장이던 장 씨는 지난달 11일 귀갓길 엘리베이터에서 정신을 잃었다. 대뇌동맥 폐색으로 인한 협착성 뇌경색이 그를 쓰러뜨렸다. 졸지에 남편을 떠나보내야 하는 곽 씨는 남편의 장기를 떼어내 타인에게 기증하는 데 동의하기까지 무척 망설였다. 하지만 곽 씨는 결단을 내렸고 6명이 새 생명을 얻었다.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하면서 이 땅에 ‘장기기증 사랑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 성당 교회 기업 학교에서 단체 장기기증 릴레이가 시작됐다. 장 씨도 그 즈음 장기기증 신청을 했다. 지난달 14일 강원도에서 열린 국제트라이애슬론대회에 출전했다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던 서창교 씨는 간 신장 각막을 5명의 환자에게 건네주고 세상을 떠났다. 경기 수원에 사는 장재용 씨는 아들이 운전하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들 친구를 대신한다는 생각으로 생면부지의 환자에게 신장을 떼어줬다.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선뜻 자신의 몸을 내주는 인간애는 메마른 세상을 훈훈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장기이식 대기환자는 2008년 현재 1만8072명에 이른다. 반면 뇌사 장기기증자는 100만 명당 3.1명에 불과하다. 스페인 35.1명, 미국 25.5명, 프랑스 22.1명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장기기증 문화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받기를 원하는 환자는 많은데 줄 사람은 적어 심장 이식은 3년 10개월을, 폐 이식은 4년 4개월을, 각막 이식은 5년 9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장기기증은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큰 사랑이다. 김 추기경처럼 사회 지도층부터 솔선할 필요가 있다. 절차를 잘 모르거나 계기를 못 잡아 기증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미국 영국 호주처럼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의사 여부를 표시하면 장기기증자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성남에서 노숙자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을 운영하는 이탈리아인 김하종 신부는 ‘죽어서도 봉사하기 위해’ 장기 및 시신 기증을 약속했다. 김 신부는 ‘선물처럼 받은 사랑, 선물처럼 주고 갑니다’라고 묘비명(墓碑銘)을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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