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로 기자가 간다] 75홀 골프마라톤 체험

  • 입력 2009년 7월 1일 08시 48분


13시간 치고 뛰고 또 치고…“골퍼 살려”

하루 종일 75홀 라운드를 한다고?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6월 28일 전북 군산 골프장에서 벌어졌다. 372명의 골프에 미친 사람들이 골프열정 하나만으로 세계 기네스 기록에 도전했다. 하루 24시간 동안 가장 많은 홀을 라운드 하는 도전이다.

10대의 어린 골퍼부터 60대 베테랑까지, 무모한 도전에 나선 골퍼들 사이에서 기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코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동이 트기 시작해, 해가 질 때까지 오직 75홀 라운드를 완주하는 게 목표였다.

○새벽 5시2분 티오프

27일 차를 몰고 군산으로 떠났다. 밤 10시 골프장 인근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민박집 구하기도 힘들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로 20여 가구나 되는 민박집의 방이 모두 동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운이 좋았다. 모처럼 터진 대박에 민박집 주인은 “골프장 생긴 이래 이런 날은 처음”이라며 싱글벙글 했다.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내일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몸도, 눈도 가누기 힘든 28일 새벽 3시. 겨우 눈을 뜨고 골프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무기(클럽)를 챙기고, 실탄(볼)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3시30분, 클럽하우스에 도작하자, 참전을 기다리는 용사들로 가득했다. 눈빛 속에선 비장한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정말 이 사람들은 골프에 미친 게 아닐까.

참가자들은 샷 건 방식에 따라 각자의 홀로 이동해 출발 준비를 했다.

“오늘의 룰은 오직 전진입니다. OB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지면 특설 티를 이용하고, 러프에 빠진 볼을 찾지 못하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플레이합니다. 그린에는 ‘OK존’을 설치했으니 그 안으로 들어가면 ‘OK’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모두 완주에 성공하세요.”

5시 2분, 드디어 시작됐다. 하늘에선 불꽃이 터졌고, ‘깡’하는 소리와 함께 백구(白球)도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정신력으로 무장한 참가자들의 목표는 골프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완주합시다. 파이팅!”

9조에서 출발한 우리의 팀은 기자를 비롯해, 일산에서 온 류시환(32·회사원) 씨와, 대전에서 온 최은호(37·자영업) 씨, 그리고 유경완(37·자영업)씨가 함께 했다. 우렁찬 구호를 외치며 75홀 대장정을 시작했다.

첫 홀을 마치고, 두 홀, 세 홀로 이어지는 동안 목표는 오직 ‘완주’에 초점이 맞춰졌다.

오로지 전진만 있는 골프이기에, 쉬지 않고 홀을 정복해 나갔다. 정신없이 후다닥 치른 첫 번째 라운드는 불과 2시간 46분 만에 끝났다.

오전 7시48분이었다. 보통 18홀 라운드에 소요되는 시간은 4∼5시간이지만 절반이 조금 넘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18홀을 마친 동반자들의 표정은 상기됐다. 잔뜩 겁에 질렸던 표정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긴 듯 어느새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별 것 아니네, 이 정도 쯤이야! 자, 다시 출격합시다.”

19홀부터는 여유가 생겼다. 공을 보면 때리고 무조건 공을 찾아서 클럽 2개를 들고 달리던 1라운드와는 양상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서로 바빠서 말도 나눌 여유가 없었지만 동반자 모두가 알아서 해결하는 능력이 생겼다.

한 번의 경험으로 명중률도 높아졌다. 36홀까지 쉼 없이 이어온 골프는 서서히 체력전으로 변해갔다. 총소요시간은 5시간 46분.

그러나 겨우 오전 10시 48분이다.

코스 중간에 마련된 그늘집에는 식사가 마련돼 있었다. 오이와 생수, 바나나, 김밥 등이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따로 식사를 할 시간은 없다.

바나나를 물고, 물을 들이키며 계속 전진하는 것이 완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마치 마라토너들이 생수를 들고 뛰는 모습 같다.

○“집사람이 미쳤데요”

36홀이 끝나면서 조금씩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다른 팀들도 밀리면서 동반자와 얘기를 나눌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점점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한 시점은 50홀을 넘어서다. 기자의 최대 라운드 경험은 45홀이다. 그것도 몇 년 전, 체력이 든든하던 30대 초반, 외국에서 딱 한 차례 경험한 일이다. 세 번째 라운드까지 마치고 55번째 홀에 도착했을 때, 기로에 섰다. “더 할 수 있겠어요? 이젠 지쳐 가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순 없죠. 끝까지 가봅시다!”

“그래요. 아침에 집사람한테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나왔는데, 오늘 일은 평생을 두고 남을 것 같아요. 골퍼라면 이 정도 추억 하나 쯤은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집에 가서 집사람한테 큰 소리 칠 수 있을 것 같아요. 끝까지 완주합시다.”

몸은 지쳐갔지만 정신력은 더욱 강해졌다. 지쳐가는 동반자를 위해 생수도 건네고, 등도 두드려주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중천에 떠 있던 해도 어느새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기 시작했다. 시계 바늘은 오후 5시를 향해갔다. 75홀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발바닥에선 불이 나고, 손은 클럽을 쥘 힘 조차 없었지만 완주를 위해 정신력으로 버텼다. 60번째 홀을 넘어서부터는 다시 기운이 솟았다. 고지가 눈앞에 보이자 젖 먹던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72번째 홀을 통과했다. 남은 건 이제 단 세 홀. “눈물이 날 지경이네요. 제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대전에서 온 최은호 씨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말문이 막히고 있었다. 73, 74, 마지막 75번째 홀의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자, 가슴 속에서 뭉클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아직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전율이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우리 멋지게 끝냅시다. 파이팅!”

새벽부터 이어진 75홀의 대장정은 오후 6시 3분이 돼서야 막을 내렸다. 장장 13시간 1분 동안 진행된 골프와의 전쟁은 4명 모두를 세계 기네스 기록 성공이라는 역사적인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군산|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화보]주영로 기자가 간다… 군산 마라톤 골프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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