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폭탄’ 터지는데… 여야 “네탓” 싸움만 하다 시한 넘겨

  • 입력 2009년 7월 1일 02시 57분


■ 정치권 책임 떠넘기기 급급

여 “우리가 3번을 양보했다”
야 “6개월 유예안 못물러서”
金의장 “워낙 민감한 문제라”
“당리당략에 빠져 타협 못해”
일부선 국회 무용론까지 대두”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유예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끝내 파국을 맞음에 따라 비정규직근로자의 대량해고가 눈앞에 다가왔다. 여야 협상과정에서 정치권은 갈등조정 기능을 상실했고 당리당략을 앞세운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 여야, 처음부터 파국을 원했나

여야는 30일 오전부터 협상타결보다는 파국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오늘 본회의에서 (2년) 유예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엄청난 국민의 심판과 분노에 직면하고 모든 불행을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원내대표는 오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세 번까지 양보했다”며 추가로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민주당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정치적 파장과 피해는 여당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세균 대표는 의총에서 “국민을 속이는 행동에 들러리 설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전날 한나라당으로부터 비정규직법 개정안 직권상정 요청을 받은 김형오 국회의장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 의장은 이날 의장실에서 한승수 국무총리와 만나 “워낙 민감하고 미묘한 문제라서 각 정당은 물론 이해당사자 간에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은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도 한 총리와 만나 “끝까지 민주당을 설득하겠지만 지금으로선 안 될 것 같다”고 협상장 분위기를 전했다. 비정규직 문제의 또 다른 키를 쥐고 있는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이날 오후 4시 45분경 한나라당 의원들 요구로 상임위를 열었지만 곧바로 정회해 버렸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독단적 의사진행을 비판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3개 교섭단체 간사들은 이날 오후 9시 30분 여의도 모처에서 다시 만났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 국회 무용(無用)론 비등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야가 비정규직근로자의 생존권을 당리당략과 연계하는 바람에 협상이 무산됐다는 지적이 많다. 비정규직법 유예기간의 경우 민주당이 이날 실무협상안으로 제시한 1년으로 하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관련법을 다시 개정해야 하는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비정규직 이슈를 통해 지지 세력을 결집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1년 이상 유예할 수 없다고 버텼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를 막기 위해 2년은 돼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와 겹치는 때인데 비정규직 문제까지 터지면 선거를 제대로 치르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여야가 비정규직법 처리에서 이처럼 정치적 한계를 보임에 따라 ‘국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법조항 하나만 바꿔주면 당장 실업난을 피할 수 있는데 여야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니 어처구니없다”며 “이럴 것 같으면 굳이 국회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은 특별법을 제정해 해고근로자를 구제할 방침이다. 당 지도부 핵심관계자는 “7월 중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면 특별법을 만들어 그 전에 ‘입법 공백’으로 해고된 비정규직을 구제하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며 “전직(轉職)지원금 지급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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