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이달에만 2만∼3만명 ‘해고대란’ 우려

  • 입력 2009년 7월 1일 02시 57분


일자리도 못구했는데…30일 오후 비정규직법 개정을 놓고 여야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은 한 구직자가 직업능력개발 훈련에 대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자리도 못구했는데…
30일 오후 비정규직법 개정을 놓고 여야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은 한 구직자가 직업능력개발 훈련에 대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향후 1년내 계약만료 근로자 70만명 추산
정규직 전환 빼고도 상당수 해고 불가피
노동부 “국회 아직 안끝나… 법개정 재추진”

정부 여당이 추진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법)’ 개정이 30일 결국 무산됨에 따라 1일부터 2년 계약이 끝나는 기간제 근로자들의 순차적 ‘해고 도미노’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법은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 주장대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정규직 전환을 꺼리는 사업주가 2년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도 없다.

○ 해고 도미노 벌어지나

해고 규모의 논란은 있지만 노동부는 7월 이후 약 1년간 2년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기간제 근로자가 7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들 모두가 당장 7월 한 달 동안에 해고 위기에 처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계약기간에 따라 7월부터 내년 6월까지 순차적으로 계약 종료일이 도래한다. 또 이 중 상당수는 정규직 전환이 되거나 직장을 옮기기 때문에 70만 명 모두가 해고될 가능성은 없다. 노동계와 야당은 이 수치를 30만∼40만 명으로 보고 있으며 당장 7월 한 달 동안 계약 만료가 되는 기간제 근로자는 2만∼3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 주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사회적 갈등이 되고 있는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대상이 900여 명인 점을 고려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규모다. 문제는 정규직 전환을 꺼리는 사업주가 2년 계약기간이 끝난 기간제 근로자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경우 해고되는 기간제 근로자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야당과 노동계는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실제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이 보조금이 당장 1일부터 지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 7월 한 달 동안의 기간제 근로자 해고 사태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70만 명 대량해고설 공방으로 마치 2만∼3만 명은 굉장히 적고 별문제 안 되는 것처럼 비쳤다”며 “노동계도 이들에 대해 어떤 대안이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소리 없는’ 해고

삼성 현대 등 대기업에서 대량해고가 발생할 경우 쉽게 눈에 띄게 된다. 하지만 비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대부분 수많은 사업장에서 소규모로 흩어져 일하기 때문에 어디서 누가 해고됐는지 즉각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계 주장대로 7월 한 달 동안의 계약해지자가 2만∼3만 명이라 하더라도 이들이 수십만∼수백만 개 사업장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별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의 한 핵심관계자는 “비정규직의 특성상 1일 이후 당장은 눈에 띄는 해고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종기가 몸속에서 곪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보완책을 서두르지 않으면 나중에 감당하지 못할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현행 비정규직법이 ‘소리 없는 해고’를 부른다는 점은 법 시행 직후인 2007년 7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인정한 점이다.

민주노총은 당시 기간제 근로자가 대량 해고된 홈에버 서울 상암점 앞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법은 시행도 되기 전에 대량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며 “소규모로 진행되는 해고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으며, 1000∼2000명의 기간제 근로자를 잘라내는 것조차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노동부 전전긍긍

노동부도 당장 기간 만료로 해고대상이 되는 기간제 근로자들에 대한 뾰족한 보호 장치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다. 노동부 고위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지원금은 고용보호법 개정, 기간제 근로자 등의 고용개선을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 등이 이뤄져야 지급할 수 있다. 그나마 한시적 지원밖에 되지 않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일단 아직 임시국회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기한은 넘겼지만 계속해서 기간연장 또는 유예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기업-공공기관 비정규직 해고 잇달아
KBS-주공 등 계약해지 통보

국회에서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논의가 결렬된 30일 일부 근로 현장에서는 비정규직으로 2년을 근무한 근로자들을 상대로 해고를 통지했다.

경기 안성시의 중소 기계 제조업체 A사는 근무기간이 2년이 넘은 비정규직 근로자 4명에게 1일 해고 통보를 하기로 했다. 30일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유예 협상이 결렬되면서 1일부터 시행되는 법안에 따라 더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 회사 김모 대표는 “아쉽지만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해고 결정을 하게 됐다”며 “비정규직 직원을 새로 채용하든지 외부 용역업체에서 인력을 조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도 비정규직 해고가 잇따랐다. KBS는 이달 말로 계약기간이 끝나는 비정규직 18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KBS는 비정규직 420명 중 331명은 자회사 정규직 등으로 전환하고 89명은 계약을 해지할 계획이다. 보훈병원도 계약기간 2년을 채운 조리사와 행정기능직, 시설기능직, 간호조무사 등 비정규직 20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주택공사는 30일로 2년을 다 채운 비정규직 근로자 31명에 대해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500여 명의 비정규직 중 300여 명이 올해로 계약기간 2년을 맞이해 해고 위험에 놓여 있다. 토지공사도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148명에 달한다.

조건부 해고를 통보한 사업장도 있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5000여 명인데 2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3000여 명에 달한다”며 “당장 임원 차량을 모는 비정규직 운전사들에게 ‘만약 오늘 비정규직보호법이 현행대로 유지되면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고, 유예가 되면 내일도 출근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직원의 숙련도 등을 감안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회사 사정상 정규직 전환은 해주지 못해도 비정규직으로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사업체도 있었다.

충남 당진군의 유리제조업체 B사는 7월 말로 근무 기간이 만료되는 비정규직 근로자 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근로자의 숙련도로 볼 때 정규직으로 전환해 계속 고용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의 인쇄·출판업체 C사는 “비정규직 직원의 근무 제한 기간이 만료된 직원들을 당분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불법인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며 “만약 문제가 된다면 해고하겠다”고 덧붙였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노동계 “정부-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앞장서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법)’ 개정이 결국 무산되자 정부입법으로 개정안을 추진했던 노동부는 침통한 분위기다. 당장 비정규직 실업자 대란이 발생할 수 있어 향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주일 노동부 고용차별개선정책과장은 “정부안이 국회에서 무산돼 입장이 매우 난처하게 됐다”며 “아직까지 국회는 열리고 있어서 이번 회기 중에는 계속 법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향후 1년간 2년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기간제 근로자 약 70만 명이 계약 종료로 인한 해고 갈림길에 놓이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 비정규직법 체제에서 비정규직 실업자 양산에 대비하는 새로운 보완책도 짜야 한다. 당장 이달부터 해고자가 나올 수 있어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각종 지원책이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결과가 노동부가 추진하는 다른 법안에도 영향을 끼칠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노동부는 올 하반기 고용 친화적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를 위한 법·제도 선진화에도 전력을 다할 계획이었다. 수년간 미뤄왔던 복수노조 및 노조전임자제도 개선 등 노동계 현안에도 타격이 가해질 것이 뻔하다. 노동부는 “외형상 별개의 사안이지만 각종 노동계 현안에서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비정규직 개정안을 일단 저지한 것에 대해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한국노총 강충호 대변인은 “노동부가 이 문제를 촉발시켜서 쓸데없는 논란을 불러왔다”며 “현행 비정규직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에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으로는 비정규직 문제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며 “정규직 전환기금을 확대하고 사용사유 제한을 담은 법 개정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도 현행 비정규직법의 한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사용자가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외주화를 통해 정규직화의 의무를 불성실하게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한국노총은 일단 현행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고용 변동상황을 지켜본 뒤 미비점을 보완·정비하는 추가적인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논의를 노사정위원회에서 다시 시작해서 정치권과 노동계만 참석했던 ‘5인 연석회의’에서 빠진 사용자 측의 의견도 반영할 계획이다. 강 대변인은 “비정규직 문제에서 사용자가 빠져서는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며 “사용자들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인 대화의 틀 내에서 차분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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