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백인 역차별 안된다”

  • 입력 2009년 7월 1일 02시 57분


소방관 승진시험서 백인 우세
市, 인종차별 논란우려 무효화
당사자들 소송내 승소 판결

<< 2003년 미국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 시는 소방대장(captain)과 부관(lieutenant) 승진시험을 실시했다. 시 당국은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문제를 출제했다. 총 138명의 소방관이 응시했다. 합격선을 통과한 응시자는 총 56명이었다. 그중 41명이 백인이고 9명이 흑인, 6명이 히스패닉이었다. 그런데 성적순으로 승진후보 19명을 뽑았더니 백인 17명, 히스패닉 2명으로 결과가 나왔다. "이 결과대로 승진인사를 하면 (흑인 등 소수인종들로부터) 인종차별을 했다는 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 시 당국은 시험결과를 승진심사에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승진대상 성적을 받은 17명의 백인 소방관들이 '역차별'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

미국 대법원이 6월 29일 판결을 내린 '백인 소방관(원고) 대(對) 뉴헤이븐 시(피고)' 사건의 개요다. 인종 및 성에 따른 차별과 역차별 논쟁이 끝없는 화두인 미국 사회는 그동안 이 사건 최종 판결을 기다려왔다. 결과는 백인 소방관들의 승리로 나왔다. 9명의 대법관이 5대 4로 갈린 예민한 판결이었다.

▽판결= 대법원은 "시험 문제나 과정에 인종차별의 소지가 없었는데도 나중에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정당하게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준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며 시 당국 패소판결을 내렸다. 1, 2심에서는 백인소방관들이 졌었다.

대법원은 "시험결과를 백지화하려면 시험에 결함이 있음을 입증할 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단지 차별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시사해주는 숫자에만 근거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의도하지 않은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 차별을 해선 안된다는 취지"라고 받아들였다.

미국 민권법은 '고의적 차별'과 '결과적 차별행위'(disparate impact) 모두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날 대법원 판결은 '결과적 차별행위'의 해석을 좁게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승진시험은 100문항의 다지선다형 필답시험과 구술로 이뤄졌다. 필답시험은 소방과학, 건축물 구조, 응급구조론 등에서 출제됐고, 구술은 3명의 면접관이 응급상황에서 판단력을 묻는 면접 방식이었다.

그런데 필답을 60%, 구술을 40% 반영한게 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시 당국은 우려했다. 구술 반영 비중을 높였다면 암기에 약한 소수인종 합격률이 높아졌을 것이란 논리였다.

이날 소수의견을 낸 4명의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소방관 직업에 깔린 인종차별의 긴 그림자를 간과했다"며 "법이 '고의적 차별'과 더불어 '결과적 차별행위'를 규정한 이유는 진정으로 동등한 기회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날 판결은 사업장의 고용관행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민권단체들은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부담을 준 판결이라는 비판적 반응을 보였다. 반면 재계와 보수층에선 "그동안 차별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도 결과가 불균등하게 나올 경우 소송을 당할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이젠 걱정을 좀 덜게 됐다"고 환영했다.

▽신임 대법관 지명자에 미칠 영향=이 사건의 2심 재판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신임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소니아 소토마요르 연방항소법원 판사다. 소토마요르 판사 등 3인 재판부는 올 2월 만장일치로 "시험결과가 소수인종에 불균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오자 시 당국은 연방법에 근거해 의무를 다하려 했다"며 시험 백지화 조치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일부 공화당 의원은 13일 시작되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소토마요르 판사가 인종적 요소에 너무 치우쳐 판결하는 인물이라는 비판의 근거로 이날 대법원 판결을 이용할 태세다. 하지만 판결 내용을 갖고 공격할 경우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역공을 받을 수 있으며, 소토마요르 판사 대법관 지명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아 인준은 무난히 통과될 공산이 크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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