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느냐 막느냐 ‘위폐 전쟁’ 새 5만원권으로 전선이동

  • 입력 2009년 7월 1일 02시 57분


국내 위폐 대부분 컬러복사
슈퍼노트와 달리 육안 식별
고액권으로 ‘국제 타깃’ 우려
신기술 도입 등 철저 대비를

5만 원권 지폐가 나온 지 일주일 만인 지난달 29일 인천에서 5만 원권을 위조해 사용하려던 이모 씨(28)가 붙잡혔다. 5만 원권 발행 이후 첫 위조지폐사범인 이 씨는 자신의 집에서 가정용 컬러복사기를 이용해 5만 원권 266장을 위조했다. 경찰과 한국은행은 육안으로 쉽게 구분이 가능한 조잡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국은 36년 만에 새 고액권이 나온 만큼 지폐 위조 시도가 앞으로 크게 늘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한은, 경찰, 국가정보원, 한국조폐공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세청 등 관련 기관들은 ‘위폐방지실무위원회’ ‘위폐방지기술협의회’를 열고 위조지폐와의 전쟁에 나섰다.

○ 미국 ‘슈퍼노트’는 육안으로 구분 불가, 국내 위폐는 아직 아마추어

세계적으로 위폐 수준은 미 달러화가 가장 발달했다. 달러화는 육안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하고 위폐감별기로도 식별이 어려운 수준의 이른바 ‘슈퍼노트’가 대규모로 유통되고 있다. 빛에 비춰야 보이는 은폐 은선,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색변환 잉크까지도 진짜 지폐와 똑같이 만들어 낼 정도다. 류일녕 한국조폐공사 위조방지센터장은 “유로화를 비롯해 대부분 나라의 위폐가 평판 인쇄 수준에 머무르는 반면 미 달러화 위폐는 요판 인쇄에 용지 및 잉크 성분까지 진짜 화폐와 흡사하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위폐는 아직 아마추어 수준이다. 국내에서 발견된 위폐는 대부분 컬러복사기로 제작되고 있으며 육안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위폐가 발견되는 통화는 달러다. 국정원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미화 6200억 달러 중 매년 약 2억 달러의 위폐가 적발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컴퓨터 스캐너 복합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위폐가 급격히 늘고 있다. 국내에서 발견된 위폐도 2002년 3000장에서 2005년 1만2900장, 2006년 2만1900장 등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2007년 현재 한국의 위폐 비율은 유통되는 은행권 100만 장당 4.1장 수준으로 영국(136.2장), 캐나다(83.2장), 유로(50.4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 세계 3번째로 첨단 위조방지장치 도입

그러나 이번 고액권 발행에 따라 5만 원권도 국제 범죄조직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은과 조폐공사가 5만 원권을 발행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도 위조방지장치다. 위조방지 장치는 일반인이 보고 만져서 쉽게 알 수 있는 1단계부터 특수 기기를 이용해야 알 수 있는 2단계, 극소수 전문가만 알고 있는 3단계로 나뉜다. 조폐공사에 따르면 이번 5만 원권에는 총 23개의 위조방지장치가 사용됐고, 이 중 10여 개는 3단계 비공개 장치다.

5만 원권에서 가장 돋보이는 위조방지장치는 ‘모션(motion)’이라고 불리는 부분 노출 은선. 스웨덴이 2006년 4월 세계 최초로 도입한 뒤 2008년 멕시코에 이어 한국이 3번째로 받아들였다. 미국도 올해 말 발행하는 새 100달러 지폐에 ‘모션’을 도입할 예정이다. 미국의 한 민간업체가 특허를 갖고 있는 이 기술은 현재까지 위조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위폐 사범들이 언젠가는 이 기술마저도 위조해낼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대책은 위조범보다 한발 앞서는 기술 개발이다. 류 센터장은 “미국은 6, 7년마다 새 지폐 도안을 만들고 첨단기술을 도입하고 있다”며 “한국도 좀 더 자주 새 디자인과 기술을 적용해 화폐를 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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