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조정제’로 구멍가게에 볕들까

  • 입력 2009년 7월 1일 02시 57분


소상인 피해 예상될 땐 대기업 사업영역-품목 조정
일각 “구멍가게 경쟁력 키워야”

“일본처럼 사전조정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시장을 둘러본 뒤 내린 지시다. 이 말은 대기업슈퍼마켓(SSM)이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00년 전국 196개에 그쳤던 SSM은 2007년 354개, 지난해 477개로 증가한 데에 이어 올해 700개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대형 마트의 포화로 성장세가 주춤거리자 SSM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세계 이마트 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6월 30일 현재 점포가 4개에 불과하지만 올해 말까지 SSM을 30∼40개 추가로 개점할 계획이다. 홈플러스도 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152개에서 올해 말 220개 안팎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윤진식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중소기업청과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유통업계 등을 소집해 비공개 회의를 열고 이 대통령이 지시한 사전조정제도 도입을 논의했다. 사전조정제도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에 진입해 중소기업의 피해가 예상될 경우 대기업의 사업 진출을 연기시키거나 사업영역을 조정해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제도. 논의 결과 정부는 SSM의 골목 상권 진출 제한 방안으로 각 시도에 사전조정협의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의준 중기청 소상공인정책국장은 “협의회는 대기업과 중소유통단체, 학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로 SSM의 입점 시기 유예 등을 맡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협의회 결정 사항이 법적인 강제성이 없어서 실효성 논란은 일 것으로 보인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정장선 위원장(민주당·평택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SSM이 골목까지 파고드는 것을 막기 위해 허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나 독일 등 일부 국가는 일정 규모 이상의 유통시설에 대해 허가제를 운영하는 등 대형 마트 출점을 제한하고 있다. 지경부 측은 “조만간 SSM을 효율적으로 규제할 방안을 만들어 입법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소비자의 이익을 확대하려면 동네 구멍가게들도 대형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자체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장희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는 “동네 구멍가게들은 중소형 슈퍼마켓 체인 가입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재고 관리 효율화와 공동구매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산업이 선진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인데 한국은 6%에 그치기 때문에 유통산업의 현대화와 대형화가 필요하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내수를 육성해야 하는 만큼 유통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5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중소 자영업자들은 대기업의 출점을 막기보다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을 갖출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며 “지역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이마트 에브리데이를 직영이 아닌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하는 등 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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