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축구통해 희망찾는 남아공 흑인청소년

  • 입력 2009년 7월 1일 02시 57분


3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샌턴의 말버러 지역. 10여 명의 흑인 소년이 듬성듬성 잔디가 자란 경사지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골대는 나무를 엮어 만들었고, 축구화가 없어 맨발로 공을 찼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인종 차별의 상징인 아파르트헤이트(유색인종 격리정책)가 시행되던 시절 축구는 남아공 흑인들에게 해방구였다. 백인들이 럭비와 크리켓, 골프를 즐길 때 흑인들은 다양한 재료로 공 모양을 만들어 축구를 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10년 전 철폐됐지만 아직도 차별의 잔재가 남아 있는 현실에서 흑인들이 꿈을 좇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축구다.

이런 점에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은 흑인들에게 큰 기회이다. 넬슨 만델라, 타보 음베키, 제이컵 주마 대통령으로 계승된 흑인 정권은 백인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이번 월드컵은 흑인의 힘을 보여줄 기회다. 흑이 중심이 돼 백을 끌어안을 수 있는 장이다.

내년 6월 11일 개막전과 7월 12일 결승전이 사커시티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커시티는 소웨토(SOWETO·South-West Township) 지역에 있다. 소웨토는 백인들이 흑인들을 강제 이주시킨 집단 거주지역이다. 사커시티는 칼라바시라는 전통 항아리 모양으로 다시 지어지고 있다. 외벽에는 수만 개의 조각을 이어 붙여 남아공 백인과 흑인의 화합을 넘어 아프리카 전체의 통합을 상징한다.

1987년 지어진 축구 전용구장 사커시티는 남아공 흑인의 희망이자 축구 붐의 진원지였다. 1990년 만델라 전 대통령이 석방됐을 때는 대규모 집회 겸 축제가 벌어졌다. 8만 명을 수용하는 이곳에서 흑인이 주축인 남아공 축구 대표팀 ‘바파나 바파나(Bafana Bafana·줄루어로 소년들, 남아공 축구 대표팀을 의미)’는 세계의 팀들과 상대했다.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축구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는 임흥세 감독(53)은 “흑인들에게 축구는 희망이다. 잉글랜드 에버턴에서 뛰고 있는 스티븐 피에나르는 흑인 선수들의 역할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국내에서 중학교 감독을 하던 시절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대외협력국 부장(서울 성수중)과 홍명보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서울 광희중)을 키워낸 주인공이다. 그는 3년 전 남아공으로 건너가 축구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임 감독은 “내년 월드컵을 맞아 마약을 하던 청소년들이 축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아공이 축구를 통해 세계 속으로 다가가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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