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자명고 찢은 낙랑공주 고향은 함흥”
더보기

“자명고 찢은 낙랑공주 고향은 함흥”

입력 2009-04-13 02:57수정 2009-09-22 13:42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기원전 45년 낙랑군 소속 25개 현의 가구와 인구 수가 자세히 기록된 목간 3점(위 사진). 2005년 평양에서 출토 됐으며 국내에 사진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래 사진은 국보 89호 낙랑시대의 금제 허리띠(1916년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고분 출토). 사진 제공 윤용구 씨·문화재청


《중국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세운 낙랑군(기원전 108년∼기원후 313년)의 정확한 위치와 지역별 인구센서스가 2005년 평양에서 출토된 목간(나무에 기록한 행정문서)을 통해 밝혀졌다.

낙랑사 전문가인 윤용구 인천도시개발공사 문화재과장(전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실장)은 12일 “기원전 45년 낙랑군 소속 25개 현의 가구(戶)와 인구 수, 전년 대비 가구 수 증감률이 기록된 공문서 목간 3점의 사진을 입수해 원문을 판독한 결과 평양,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에 걸친 낙랑군 현들의 정확한 위치를 밝힐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목간 사진은 지난해 11월 북한 사회과학원이 펴낸 자료에 수록돼 있다. 이 목간의 존재 사실과 일부 내용은 2007년 윤 과장이 북한 사학자의 글을 통해 국내에 알린 바 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원문을 모두 판독했다. 이 목간은 ‘樂浪郡初元四年縣別戶口多少□簿(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다소□부·□는 판독 불가)라는 제목으로 인구센서스 결과를 약 710자로 적었다. 한국목간학회(회장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11일 10여 명의 학자가 모인 가운데 비공개 판독회를 열어 이 목간의 내용을 검증했다.

목간에 따르면 기원전 45년 낙랑군의 가구는 4만3845호, 인구는 28만4261명이었다. 목간에는 평양, 평안남도, 황해도, 함경남도, 강원도 지역에 해당하는 낙랑군의 25개 현의 지명이 모두 기록돼 있다. 낙랑군이 이 일대에 걸쳐 있었다는 증거다. 그동안 한국, 북한, 중국학계에서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 한반도(대동강 유역), 중국 요동, 요서 지역 등으로 논란을 벌여왔다.

사랑하는 호동왕자를 위해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가 살았던 낙랑국으로 알려진 낙랑군 소속 부조(夫租) 현(현재 함경남도 함흥시)에는 당시 1150가구(인구수 8000여 명·‘8천(千)’자만 판독 가능)가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25개 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았던 조선(朝鮮) 현(옛 고조선의 중심 지역)은 현재의 평양으로 5만6890명(9678가구)이 산 것으로 집계됐다. 인구수가 가장 적은 현은 현재의 황해북도 인산군 지역인 제해(提奚) 현으로 1303명(173가구)에 그쳤다.

윤 과장은 “조선 현과 제해 현의 인구수 차는 40여 배에 이른다”며 “낙랑군을 설치한 뒤 63년이 지난 시점까지 현별 규모를 맞추지 못한 것은 옛 고조선 지역의 세력 판도를 그대로 인정해 현을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의 지배력이 약해 고조선 사회의 전통과 생활 방식이 그대로 유지됐다는 설명이다.

윤선태 동국대 교수(고대사)는 이 목간에 대해 “한반도에 4세기나 존속했지만 실체를 거의 알지 못한 고조선 멸망 이후부터 삼국시대의 이전까지 우리 고대사의 공백을 채워줄 자료”라고 말했다. 한국목간학회는 25일 오후 2시 동국대 학림관 211호에서 여는 연구발표회에서 이 목간의 내용을 공개하며, 동북아역사재단도 10월 낙랑 목간을 검토하기 위한 학술회의를 열 계획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