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감원설에 떨려서 휴가 못간다”

  • 입력 2008년 11월 19일 15시 51분


증권회사 직원 신모(32·서울 강남구)씨는 올해 휴가를 단 5일만 다녀왔다. 6년차인 신씨의 연차휴가는 17일이지만 절반도 사용하지 못 했다. 최근 펀드 손실을 본 고객들의 항의에 시달리느라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는 휴가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신 씨는 "연차 휴가는 수당으로 보상받을 수 없으니 쉬지도 못 하고 돈도 못 버는 셈"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경제위기로 회사마다 구조조정설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신 씨처럼 휴가를 자진해서 포기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회사가 적극적으로 휴가 사용을 권유하고 대신 금전적 보상 의무가 면제되는 '연차휴가사용촉진제'가 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 연차휴가사용촉진제 있으나마나

통폐합 대상에 포함된 공기업 직원인 서모(35· 광주시 서구) 씨. 연말까지 연차 휴가를 모두 소진해야 하지만 한 달 안에 10일이나 남은 휴가를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인사철을 앞두고 있어 휴가를 가기가 더욱 눈치가 보인다.

서 씨는 "요즘은 휴가 날짜를 받아 두고 출근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라면서 "인사철에 자리 비웠다가 업무에 차질이라도 빚어질까 조바심이 난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주 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근로자들의 휴일 및 휴가일수가 증가했지만 휴일 및 휴가 사용율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실시한 '실 근로시간 단축 저해요인' 조사에 따르면 휴일ㆍ휴가 사용일수가 9.83일로 휴일· 휴가 부여일수 19.86일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일ㆍ휴가를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근로자도 43.5%에 달했다.

● "주말 근무 수당 신청 아무도 안 해"

휴가를 가기는커녕 휴일 근무를 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주말 근무 수당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어려운 회사들이 긴축 경영에 돌입하자 '자의 반 타의 반' 비용절감에 동참하는 것이다.

주말에도 종종 출근하는 은행원 송 모(33·부천 원미구) 씨는 휴일 근무 수당을 한 번도 신청해 본 적이 없다. 송 씨는 "시중에 돈줄이 마르면서 사실 은행 업무는 더 한산해졌지만 쉬기가 불안하다"면서 "휴일 근무 수당을 챙기는 것처럼 괜히 튀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업무 특성상 휴일이 따로 없는 잡지사에 다니는 정 모(38·서울 서초구)씨도 휴일 근무 수당은 바라지도 않는다. 정씨는 "중소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는 3개월 동안 무급 휴가를 가게 됐다"면서 "요즘 같은 시기에는 휴일 근무를 하더라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