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사무처는 경제위기 무풍지대?

  • 입력 2008년 11월 4일 02시 54분


“예산 남겨봐야”… 12월31일 124건 구매

공기청정기-전자레인지 등 품목도 다양

피복비 대상 아닌 직원에도 쇼핑몰 쿠폰

폭행-성매매 물의 빚어도 ‘솜방망이 징계’

■ 작년-올해 예산 집행 뜯어보니

국회 사무처가 방만한 예산 집행과 허술한 인력 관리를 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국회 사무처는 입법기관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감시와 견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말 예산 밀어내기=한나라당 이종혁 의원이 3일 국회 사무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무처는 자산취득비 32억 원 가운데 46%를 4분기(10∼12월)에 썼다.

특히 12월에만 11억7200만여 원을 지출해 한 해 예산의 36.6%를 연말에 집중 사용했다. 12월 31일에는 하루에 124건의 물품을 사는 데 1억8000만 원을 쓰기도 했다.

4분기 구입목록에는 공기청정기, 전자레인지, 자전거 등 일반 행정부처에서 보기 어려운 물품은 물론 선풍기도 들어 있어 남는 예산을 연말에 소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다.

더욱이 국회 사무처는 물품관리법에 따라 주요 물품의 ‘정수 책정기준’을 마련해 관리해야 하지만 여태까지 이를 지키지 않았다. 조달청은 5월에 1번, 8월에 2번 공문을 발송해 ‘주요 물품 정수 책정기준’을 안내하고 결과를 통보하라고 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사무처는 또한 제복 착용자에게만 주도록 한 피복비를 전체 직원의 70%(755명)에게 지급하면서 2003년 이후 5년간 6억5800만 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피복비 지급 대상에는 제복이 필요 없는 국제국이나 의사국, 교육훈련 담당자들도 포함됐다. 이들은 9만∼20만 원 상당의 쇼핑몰 쿠폰으로 피복비를 지급받았다. 제복이 아닌 일반 의류를 사도록 한 것이다.

이 밖에 1월 의원실 집기를 교체하면서 세트당 200만 원짜리 책상과 개당 69만 원인 의자를 들여놓느라 7억4000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방만한 직원 관리=국회 사무처는 이처럼 예산 낭비뿐 아니라 사무처 직원들의 관리도 허술해 잘못에 대해 적절한 징계조차 하지 않았다.

사무처 직원 A 씨는 지난해 다른 사람이 만든 대학졸업 작품을 본인이 제작한 것처럼 속여 제출한 사실이 적발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 사실이 올 2월 뒤늦게 국회에 통보됐지만 국회 차원의 징계는 별도로 없었다.

B 씨는 5월 해외에서 성매매를 한 뒤 상대 여성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하다 적발됐지만 감봉 3개월 처분에 그쳤다.

이에 앞서 서기관인 C 씨는 작년 6월 술에 취한 상태에서 택시 운전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택시 운전사를 폭행했다. 하지만 사무처는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하지 않았다.

검찰이 국회에 통보한 사무처 공무원의 범죄처분 사례는 지난해 18건, 올해는 9월 말 현재 8건이다. 이 중 국회 차원의 징계를 받은 건 1건에 불과하다. 행정부 공무원은 음주운전만 적발돼도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것과 비교하면 국회가 지나치게 제 식구를 감싸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사무처 당국자는 “앞으로 범죄처분 통보자 처리 절차 및 기준을 만들어 엄격히 처리하려고 한다”며 “지난달에는 음주운전 처분규칙을 마련해 그 뒤부터 관련 범죄가 근절됐다”고 말했다.

▽견제의 사각지대=국회 사무처의 이 같은 실태가 좀처럼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감사시스템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감사를 하지만 회계검사에 국한된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어서 입법부에 대한 직무감사를 할 수 없다. 국회 차원의 자체 감사가 활성화돼야 하지만 2006년 이후 3년 동안 종합감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국회 운영위원회의 견제도 유명무실한 편이다. 관례적으로 여당 원내대표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1년을 채우는 경우가 많지 않다. 사무처의 속사정을 알만 하면 운영위원장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국회의원들도 자신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국회 사무처에 메스를 들이대기를 꺼려하는 실정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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