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홍건표 “돌아가시면 끝날 무형문화재 많다”

  • 입력 2008년 10월 30일 17시 59분


30일 폐막 2008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 조직위원장

2006년 겨울 중요무형문화재 ‘바디장(筬匠)’ 구진갑 옹이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수자를 남기지 못한 구 옹의 죽음은 바디장의 전승 단절을 의미한다. 바디란 베틀의 핵심 부분으로 베의 굵고 가늚을 결정한다. 고인은 바디의 제작 기술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4호 벼루장은 1989년 이창호 옹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나 그가 죽으며 대가 끊겨 자동 소멸됐다.

지금까지 3건의 중요무형문화재가 기능보유자 또는 조교의 사망으로 해제되거나 해제 직전에 있다. 이외에 12건은 문화생이 2인 이하로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무소속 송훈석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전승은 고사하고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가운데 재산과 소득이 한 푼도 없이 무허가 건물에서 와병중인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중요무형문화재들의 나이가 많은 것도 보존에 큰 장애다. 역대 중요무형문화재 가운데 전승이 중단됐다가 재 전승된 사례는 ‘화장(靴匠)’ 단 1건뿐이다. 그만큼 한번 맥이 끊기면 다시 잇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 부천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2008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이하 엑스포)’는 고사위기에 처한 우리 무형문화재의 보전과 계승, 그리고 산업화를 함께 고민하는 장이었다. 소리 소문 없이 개막했지만 25만 명이 다녀갔다.

행사를 이끈 홍건표 조직위원장(부천시장)은 “국민들이 무형문화재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 홍보조차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지난 10일부터 30일까지 부천 상동에서 열린 엑스포에는 유네스코에 등록된 몽골의 장조, 베트남의 공 음악 등 해외 무형문화재들과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들까지 공연 82팀-110회과 전시 270명-739점이 참여했다. 일반 시민들이 직접 옹기나 금속공예를 체험해 보는 행사도 있었다.

엑스포 추진 단계에서도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고 한다. 부천시의회의 이해부족으로 용역 발주를 못하고 국비 지원도 못 받게 됐다. 예산 60억 가운데 20억을 경기도에서 지원했는데 이 돈을 시의회에서 삭감했다. 우여곡절 속에 행사 진행은 결정됐지만 시간과 경비가 부족해 사전 엑스포(PRE-EXPO)형태로 치를 수밖에 없었다.

홍 위원장은 “악조건 속에서 25만 명의 인파가 찾은 것은 고무적”이라고 자평했다.

기자는 홍 위원장을 만나기에 앞서 26일 오후 행사장은 찾았다. 행사 막바지였지만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아 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조직위에 따르면 처음에는 단체나 초대장으로 온 관람객이 많았으나, 행사 후반으로 갈수록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았다고 한다.

전시장 안에는 금칠한 장롱, 오색실로 수놓은 병풍, 아기자기한 은 식기, 화초장, 나전칠기, 진주 브로치 등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짜리 예술품들이 즐비했다. 가격표를 달지는 않았지만 수억원 가치(보험가 산정기준)의 작품도 있다. 이런 고가품들은 특급 호텔 로비를 장식하거나 주로 재벌가 또는 부유층이 혼수로 주문해 간다고 한다.

엑스포가 열린 영상단지 뒤편에는 ‘궁궐 건축의 대부’인 신응수 대목장이 지은 기와집 9채가 들어 앉아 있었다. 경복궁을 복원하는 데 들어가는 소나무를 가져와 지었다고 한다. 무형문화재들은 직접 그 집에 거주하면서 작업하는 모습을 일반에 공개했다. 현재 궁시장 김박영, 은공예 곽홍찬 등 8개 분야 장인들이 들어와 있다. 엑스포가 끝나도 이들은 남아 교육과 전수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이들이 생산한 작품은 판매하거나 산업관에 전시된다.

홍 위원장은 “공방으로 지어진 기와집들은 1000년을 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앞으로 70여 채를 더 지을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는 “비싼 콘트리트 건물이 다 허물어져도 기와집은 문화유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엑스포 안에서 전통공예는 더는 박물관 유물이 아니었다. 무형문화재를 따라 활을 만들고 탈춤을 추는 아이들은 책이 아닌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이 중에서 단절 위기에 처한 전통 문화를 계승할 적임자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홍 위원장은 엑스포와는 별도로 무형문화재 산업관을 짓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관에 한실을 만들고 무형문화재가 만든 작품을 전시하면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이 전통을 접목하는 일이 더 수월해질 것이란 설명이다. 모 대형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이미 의사를 타진해 왔단다. 또한 가내 수공업 형태의 전통주(酒)를 브랜드화해서 엑스포 이름으로 판매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이미 우리 전통 무형문화재의 진가는 산업계에서 더 알아주고 있다. 홍 시장은 그 예로 옻칠을 들었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옻칠은 방수와 방습 효과 외에도 전자파 예방, 살균 작용, 아토피·알레르기 예방, 항암효과가 뛰어나다. 일본은 중국에서 옻 분말을 수입해 정제해 되판다고 한다. 옻칠은 흡착력이 뛰어나 식기류나 수저에서부터 아파트나 전자제품, 가구 어느 것에도 쓸 수가 있다. 제주 롯데호텔의 유명한 로비벽화는 채화칠기(彩畵漆器) 장인 김환경 선생(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4호 칠장)의 작품이다. 모 대기업은 선생의 옻칠 상자에 2000만원 대의 최고급 옷감을 담아 판매하고 있다.

또한 옹기의 과학적 원리를 적용한 김치냉장고, 자수장 한상수 매듭장 김희진 선생의 작품이 담긴 기프트카드, 서울시 무형문화재 손대현 선생이 옻칠한 1억 5000만원(풀 패키지)가치의 80인치 PDP TV 등 산업화는 이미 시작됐다.

홍 위원장은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시장과 비슷한 형태의 전통공예 경매시장도 구상중이라고 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인사동에 가서 가짜만 사게 해선 안 된다”며 “진품을 팔아 한국 전통공예의 소중함을 알려야 된다”고 했다.

엑스포 사무국은 국내 무형문화재들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사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무형문화재들을 대신해 신청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다. 현재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무형문화유산)에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등이 들어가 있다.

홍 위원장은 “내년에 국비가 지원되면 좋지만 만약 안 되면 소규모라도 엑스포를 치를 것”이라며 “10만평 영상 단지를 전통으로 뒤덮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엑스포를 찾아 작품을 감상한다면 그중에서 분명히 후계자들이 나올 것”이라며 “이와 별도로 현대 예술과 접목하는 길이 열린다면 무형문화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영상=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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