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歷史변조와 좌편향 史觀

  • 입력 2008년 10월 13일 19시 57분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은 북한의 국가명절 중의 하나다. 63주년이 되는 올해도 성대한 기념식과 함께 다양한 경축행사가 펼쳐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안 보여 와병설이 더 힘을 얻었지만 내 관심은 기념일 자체에 쏠렸다. 김 위원장의 신상에 관한 섣부른 추측이 두려웠던 터에 마침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修正)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남의 집 잔칫날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 10월 10일은 북한 노동당의 창건일이 아니다. 이건 중요한 문제다. 북은 국가가 당(黨)의 영도를 받는 나라다. 노동당 규약이 헌법보다 위에 있다. 그런 당의 창건일이 잘못됐다면 그날 태어났다는 당(黨)의 실체나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북이 의도적으로 날짜를 바꿨다면 더욱 그렇다.

북한은 1945년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나흘간 평양에서 ‘조선공산당 서북 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열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정치노선과 조직 강화에 관한 결정서’가 채택됐고, 이에 따라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조직됐기에 대회 첫날인 10일을 노동당 창건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 자신들이 1949년 발간한 조선중앙연감 715쪽에도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은 13일에 조직됐다고 쓰여 있다.

北노동당 창건일이 10월 10일?

북한 전문가인 일본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東京)대 명예교수도 ‘열성자 대회’는 10월 13일 하루만 열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당 창건일은 10일이 아닌 13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왜 10일인가.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나 중화민국(현 대만)의 정권 출범일인 쌍십절(10월 10일) 같이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쉽다고 생각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어떻든 역사의 변조임은 분명하다.

북의 자의적 역사 다루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은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노동당의 모태(母胎)로 보면서도 모든 자료와 간행물에서 ‘분국’이란 말을 지워버렸다. 그 대신 ‘조선공산당 북조선 조직위원회’란 말을 쓰고 있다. 모태를 부정한 것인데 왜 그랬을까. 당시 해방공간에선 조선공산당의 중앙조직(본부)이 서울에 있었다.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 김일성이 중앙조직도 아닌 ‘분국’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 노동당의 창건일은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1925년 4월 17일이나 재건된 1945년 9월 11일이든가, 아니면 북조선 노동당이 창당된 1946년 8월 29일이나 북조선 노동당과 남조선 노동당이 합당해 조선노동당으로 출범한 1949년 6월 30일 중 어느 하나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당 사건들의 역사적 의의나 비중으로 보아 그게 합당하다는 것이다. 북이 이런 말에 귀 기울일 리는 만무하다. 그럴 경우 김일성의 위상에 손상이 가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노동당 창건일 얘기를 하게 됐지만 북한이 날조한 게 어디 이 하나뿐이겠는가.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도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 김응우가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게 북이다. 8·15 광복도 처음엔 ‘연합군의 승리’라고 했다가 ‘붉은 군대의 승리’로, 그리고 다시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의 승리’로 이름과 성격을 바꿨을 정도다. 북이 기술한 한국의 근현대사는 김일성 김정일의 가계사(家系史)에 지나지 않는다.

폐쇄된 국가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는 공통된 현상이기는 해도 북이 유독 심하다.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의 현대역사는 현재의 정치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완전히 날조된 것들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역사 날조도 革命의 수단

그들에게 날조, 거짓말, 약속 불이행 따위는 흠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혁명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혁명을 위해 한때 매춘업도 했다는 스탈린과 같은 논리인 것이다. 엊그제 공개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북한과 역사를 놓고 논쟁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사실(史實)과 유리된 그들의 근현대사를 송두율 교수의 표현대로 ‘내재적 접근’이라도 해서 이해해줘야 하나. 그들의 사료(史料)와 해석을 우리와 동일한 엄밀성의 잣대 위에 올려놓을 수 있기나 한가. 북의 변조된 역사를 온정적으로 기술하지 못해 애태우는 사람들이 답해야 할 것 같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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