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와 종교, 생명과 선교

  • 입력 2007년 8월 31일 22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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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소속 일부 선교단체가 그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사후(事後)대책 실무회의를 열고 정부가 탈레반과 선교(宣敎) 중지에 합의한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 단체 간부는 “선교사들은 납치당하면 자기가 책임을 지고 죽게 되면 죽는다는 서명을 하고 나가기 때문에 국가에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질이 다 석방돼 국민이 겨우 ‘43일간의 악몽’에서 벗어난 날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은 실망스럽다. 이 단체는 석방 교섭 도중엔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정부가 ‘납치범들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원칙을 지켜 희생자가 속출했다면 선교단체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인질범과 타협한 것은 ‘나쁜 선례’라는 국내외의 비판이 커지는 상황이다. 더구나 거액 몸값 지불설(說)이 외신에 보도되면서 아프간 인접 국가와 분쟁 지역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테러나 납치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공포에 떨고 있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31일자에서 “2001년 9·11테러와 2003년 이라크전 이후 가뜩이나 국제구호활동 요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공산이 크다”고 보도했다. 아프간과 캐나다 외교장관, 그리고 독일 녹색당 대변인도 이번 협상이 또 다른 납치살해극의 전주곡(前奏曲)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런 비판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정부가 직접 나서서 납치범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무엇보다 피랍자들의 인명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샘물교회 봉사단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순간부터 개신교 단체들이 위험 지역에서 벌이는 선교나 봉사활동은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넘어 국가공동체 전체의 문제가 됐다. KWMA 관계자들이 “선교사위기관리기구가 확대 강화되면 앞으로 이런 사태가 재발해도 정부가 나서는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국가와 종교, 생명과 선교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부족한 발언으로 들린다. 대다수 교회와 교인도 자신들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보는가. 이번 인질사건 자체와 석방 협상이 몰고 올 후유증에 대비하며 선교 방법의 변화를 모색하는 게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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