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들어봐요 국토의 끝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속삭임

  • 입력 2007년 8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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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번 찾은 제주도. 그래도 마라도에 상륙하기는 기자도 처음이다. 서귀포시 대정읍의 송악산에서 빤히 보이는 납작한 섬. 그 마라도가 내게는 아픈 기억의 섬이다.

지난해 11월 25일 모슬포 방어축제 때 체험방어낚시 행사 독려차 바다로 나갔다가 높은 파도에 배가 침몰해 실종된 당시 서귀포시장의 사고 때문이다.

당시 기자도 취재차 어선 한 척에 올라 마라도와 가파도 사이 급물살 흐르는 거친 바다에 떠 있었다.

○ 몽생이가 일군 땅과 바다, 모슬포

이곳 바다는 평소에도 거칠기로 이름난 곳이다. 특히 마라도와 가파도, 송악산 사이는 그렇다. 방어는 하필 거기 모인단다. 그 시기가 10월 하순부터 2월까지. 어부들은 앞 다투어 이 거친 바다로 돌진한다.

목숨까지 거는 그 고통을 안다면 회 한 점도 허투로 먹을 일이 아니다.

모슬포 마라도 가파도가 속한 대정읍. 거친 섬 제주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모진 땅이다. 여름은 몹시 덥고 겨울은 매운 데다 파도까지 센 탓이다. 바람 많은 제주라도 여기 바람은 유독 거칠다. 오죽하면 ‘대정 몽생이’일까. ‘몽생이’란 억척이를 뜻한다.

쌀농사 쉽지 않은 제주. 섬에서 대정은 ‘곡창’으로 알려져 있다. 또 배추는 달기로, 마늘은 맛스럽기로 이름났다.

쌀 많이 난다니 축복받을 일이지만 실상은 반대다. 섬에 주곡 대느라 정작 제 자식 뭍 유학은 언감생심. 그리고 몽생이의 삶은 대물림됐다.

격변의 지난 50년 동안 대정 사람들은 고기 잡고 농사짓기에 일념 했다. 뭍사람들의 지갑을 겨냥한 관광산업 열풍도 아랑곳없이…. 그래서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대정 바다의 급물살 속에서 잡은 쫄깃한 고기 맛이 최고임은 제주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한다. 권위주의 시대에 중앙(서울)에서 힘 있는 사람이 내려왔다 하면 의당 그날 저녁상에는 마라도 앞바다에서 잡은 참돔 방어 등 횟감이 올랐다. 마라도 가파도 해녀가 잡은 해물도 함께….

모슬포 방어축제는 그렇게 시작됐다.

관광수입 좀 보자며 뒤늦게 눈뜬 대정 몽생이의 소박한 꿈이었다. 낚싯배 20여 척 모아 영어법인 만들고, 낚시 나가기 전에 주인집에서 하룻밤 묵으며 객담 나누는 민박도 하고, 고기 잡는 전통어촌에서 고기 잡는 체험을 파는 관광어촌으로 바꾸자는 일대 개혁이었다. 그게 6년 전인 2001년이었다.

‘전국 최고의 고기마을을 만들자’는 꿈에 부풀어 시작한 축제는 한 해 두 해 지나며 점점 번성했다.

지난해는 그 절정이었고 읍 단위 축제로는 전국 최대 규모였다.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된 것도 기념하고 대정읍이 남제주군에서 서귀포시로 편입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었다. 그런 겹경사 날 사고가 났다. 대정 몽생이는 더더욱 슬펐다.

○희망의 섬, 마라도.

국토의 남쪽 끝 마라도. 등록된 가구는 62가구지만 실제로 사는 사람은 5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모슬포항을 떠나 25분 만에 도착한 섬. 한여름 땡볕 아래 불타듯 뜨거웠다. 해안은 온통 수면 위로 20여 m나 치솟은 검은 화산암 단애(斷崖). 파도에 뭉그러진 절벽에는 뻥뻥 구멍이 뚫렸고 그 속으로 바닷물이 쉼 없이 오갔다.

동서 500m, 남북 1300m, 둘레 4200m의 평지 초원에 서 있는 해송이 거의 유일한 나무다. 가장 높은 언덕에 등대와 태양열 집적판, 구릉 아래 서쪽에 동네가 있다.

원래는 숲이 우거졌으나 1883년 노름빚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이 섬에 들어온 사람이 불을 놓아 몽땅 태운 이후로는 풀만 덮여 있다.

고적하게 떠 있는 한 점 섬 마라도. 거기 올라 적막한 바다의 외침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그 꿈을 접자. 관광용 전동카트 대여를 강권하는 호객소리 때문이다.

처음 섬을 찾는 이에게는 실망스러운 풍경이다. 하지만 걸어서 한 시간쯤 걸리는 섬을 카트로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마을 안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는 ‘꿈의 학교’다. 돌담으로 싸인 단층 양옥 교사(校舍)와 잔디 깔린 운동장 때문만은 아니다. 이 학교 학생은 항상 1등이다. 학생이 딱 한 명이니까.

○ 마라도의 특산물 해물자장면

휴대전화 CF로 유명해진 마라도 자장면도 특산물이다. 자장면집은 세 곳인데 잘게 썰어 얹은 삶은 소라가 백미다.

초콜릿박물관을 지나면 국토 최남단비가 장군바위 앞에 있다. 얕은 구릉을 넘자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언덕의 풀밭 위로 마라도성당과 등대가 보인다. 이쯤 와야 섬의 제 모습이 보인다. 들리나니 바람소리, 보이나니 바다와 하늘. 북쪽으로 제주섬의 송악산과 산방산이 보인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땅 끝에서 절망하는 사람, 땅 끝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 1998년 외환위기의 골이 깊던 때 땅 끝 해남에 사람이 몰렸다.

삶에 절망한 사람들, 어디서도 위로받지 못해 시름겹던 사람들은 땅 끝을 찾았고 거기서 배웠다. 더 갈 수 없다면 돌아서야 함을, 끝이 곧 시작이라는 진리를….

마라도 역시 같다. 이 섬의 절, 교회, 성당은 그래서 아름답다. 성당 앞 표석에는 ‘포르지운콜라’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13세기 이탈리아의 성자 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행한 예배당의 이름이다. 예서 영감을 얻고 아름다운 삶을 산 성인처럼 이 섬을 찾는 이들도 그러하기를….

제주 마라도=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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