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커져가는 ‘정윤재 미스터리’

  • 입력 2007년 8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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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벌이는 아파트 공사현장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과 각별한 사이인 부산의 건설사주 김모 씨가 실소유주인 I건설업체가 부산 연제구 연산8동 8만7054㎡에서 벌이고 있는 재개발 공사 현장. 영세한 이 업체가 2500억 원 규모의 공사를 맡은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김 씨가 벌이는 아파트 공사현장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과 각별한 사이인 부산의 건설사주 김모 씨가 실소유주인 I건설업체가 부산 연제구 연산8동 8만7054㎡에서 벌이고 있는 재개발 공사 현장. 영세한 이 업체가 2500억 원 규모의 공사를 맡은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자리 주선하면서 청탁-뇌물 몰랐나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관련한 정상곤(53) 전 부산지방국세청장과 부산의 건설업자 김모(41) 씨 간의 뇌물 사건이 점점 더 깊은 의혹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전 청장에게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한 김 씨는 세무조사 중단을 넘어 세무조사팀으로부터 제보자 입막음 권유까지 받았다.

일개 건설업자인 김 씨 청탁만으로 부산지역 세정의 최고 책임자가 세무조사팀까지 움직여 조직적인 김 씨 비호에 나섰다고 믿기는 어렵다.

정윤재(43)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이 사건은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번져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 전 비서관, 정말 몰랐을까?=김 씨는 지난해 7월 정 전 비서관에게 “부산국세청장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정 전 비서관은 정 전 청장에게 김 씨의 전화를 받아 줄 것을 부탁했다.

이후 정 전 청장은 김 씨와 통화를 한 데 이어 김 씨를 자신의 집무실 옆 사무실로 불러 사정을 들었다. 당시 김 씨의 회사는 세무조사를 받고 있었고 김 씨는 정 전 청장에게 세무조사 관련 청탁을 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은 김 씨가 정 전 청장과 통화하고 싶어 한 이유를 알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28일 “청와대를 떠나는 날(10일) 정 전 청장이 구속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내가 두 사람을 소개해 줬기 때문에 깜짝 놀랐고 당황했다”고 말했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이날 “(세무조사 받는) 건설업자가 세정 책임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면 이유는 알만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뭘 믿고 점점 더 대담해졌나=김 씨는 정 전 청장과의 첫 만남 뒤 지난해 8월 중순 정 전 청장을 다시 찾아가 훨씬 대담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차명으로 소유한 두 회사에 대해서는 세금을 줄여 주고 다른 두 회사는 세무조사 대상에서 빼 달라는 청탁이었다.

며칠 뒤 서울에서 가진 정 전 비서관, 정 전 청장과의 식사 자리가 파한 뒤에는 택시를 타는 정 전 청장에게 현금 1억 원이 든 가방을 건넸다.

▽부산국세청의 김 씨 비호=부산지검은 정 전 청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김 씨에게서 “(지난해 탈세 사실을 제보한 A 씨에게 5000만 원을 건네 입막음을 시도한 것은 부산국세청) 조사팀 소속 공무원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처음엔 김 씨의 전화도 받지 않던 정 전 청장이 정 전 비서관의 전화만 받고 한 차례 만난 뒤부터는 부산국세청 조사팀 간부를 시켜 김 씨가 세무조사에서 빠져나가는 방법까지 조언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 당시 세무조사를 담당했던 부산국세청 조사팀 간부는 퇴직 후 김 씨 회사의 고문으로 영입돼 고문료를 받기도 했다.

▽정 전 비서관 혐의는 확인되지 않았다는데=김 씨는 세무조사 물 타기에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다. 정 전 비서관이 중간에 다리를 놔 주지 않았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김 씨는 정 전 청장에게만 고마움의 표시로 1억 원을 건넸다.

정 전 비서관은 28일 “셋이 저녁식사를 하게 된 것도 당일 (식사 자리에) 참석해서 알았는데 (뇌물 건넨)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나”라고 주장했다. 김 씨가 정 전 청장이 사후에 1억 원을 받은 사실을 정 전 비서관에게 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정 전 비서관과 김 씨의 친분이 더 두텁기 때문이다.

▽정 전 청장이 받은 1억 원 용처는=검찰은 “1년이 지난 일이고 현금으로 건네진 것이라 조사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통상적인 뇌물사건 조사와는 다른 대목이다. 더욱이 차분한 성품의 정 전 청장은 조직 내 신망도 두텁고 자신의 인사와 관련해 몸가짐에 특별히 신중했을 고위 세무공무원. 그런 그가 단 두 차례 본 건설업자가 건넨 뇌물 때문에 경력을 망칠 수 있는 데도 세무조사 무마 청탁에 응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김 씨, 구속적부심서 어떻게 풀려났나=김 씨는 7월 16일 300억 원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된 뒤 27일 부산지법 구속적부심에서 보증금 3000만 원에 풀려났다. 법원이 밝힌 사유는 김 씨가 구속적부심 전 피해액을 모두 갚았고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것.

부산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피해 액수가 너무 커 석방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별수사통인 대검의 한 관계자는 “돈을 횡령했다가 적발되면 갚고 안 걸리면 안 갚으면 된다는 논리다”라며 “이상한 판단”이라고 꼬집었다.

▽김 씨, 구속적부심 직전 거액 어디서 구했나=김 씨는 6월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뒤 7월 24일 구속적부심이 있기 직전까지 기술신용보증기금(기보)과 신용보증기금(신보) 보증을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았던 62억 원을 모두 갚았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김 씨는 횡령한 돈으로 거액의 주식 투자를 하고 골프 회원권 등을 사들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신용불량 상태였다.

따라서 그가 두 달 만에 거액을 손쉽게 구한 방법과 돈의 출처에 대해 의혹이 쏠리고 있다. 7월 초 김 씨 회사를 압수수색한 당시 검찰은 그의 사무실에서 현금 4억 원이 보관된 금고 2개를 발견했다.

▽김 씨 대출보증, 왜 참여정부 출범 직후에 몰렸나=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4월과 5월, 정부 출연 공공기금인 기보와 신보의 김 씨 회사에 대한 대출보증은 급상승했다.

김 씨는 2003년 4월 H토건 명의로 기보에서 26억9500만 원, 신보에서 12억9300만 원을 각각 보증받았다. 다음 달엔 J건설 명의로 기보에서 11억100만 원을 보증받았다. 두 건설사 명의로 두 기금에서 받은 보증 54억여 원 중 50억여 원이 2003년 4월 이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당시 김 씨가 실소유주인 건설업체들의 매출액은 변화가 거의 없었다.

두 기금 관계자는 “심사를 거친 정상적인 보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 씨와 친분이 있는 관계자는 “김 씨의 회사 매출이나 구조로 볼 때 두 기금에서 50억 원은커녕 2억, 3억 원도 보증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김 씨가 신보에서 보증을 받을 때 ‘기보에 제출한 자료는 문제가 있다’고 말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 씨, 뇌물공여 적극 시인한 이유는=김 씨는 계좌추적이 불가능한 현금을 뇌물로 썼지만 검찰 조사에서 정 전 청장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정 전 청장의 구속 사유 대부분은 김 씨가 적극적으로 뇌물공여 사실을 시인했다는 점이었다.

검찰은 “객관적인 증거들이 명백하게 확인됐고 김 씨가 선처를 바라서인지 임의로(스스로) 시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뇌물공여 사범들은 직접 증거가 없을 경우 끝내 뇌물공여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산지검은 30일에도 여전히 “김 씨에 대한 조사는 기소를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했다. 정 전 비서관을 소환 조사했다면 오히려 검찰권 남용으로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검찰 고위 관계자들조차 “이 상태라면 검찰 수사가 미진했다는 의혹이 더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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