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탄압 도 넘었다” 48년만의 긴급회동

  • 입력 2007년 8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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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신문 방송 통신사 편집·보도국장들이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운영위원회에서 현 정부의 언론 정책을 언론 탄압으로 규정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운영위에는 47개 언론사(19개사는 위임)가 참석했다. 김미옥 기자
전국 신문 방송 통신사 편집·보도국장들이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운영위원회에서 현 정부의 언론 정책을 언론 탄압으로 규정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운영위에는 47개 언론사(19개사는 위임)가 참석했다. 김미옥 기자
30일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운영위원회에서 47개 회원사의 참석자들이 한목소리로 정부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정부의 취재 제한과 언론 자유 훼손에 대한 위기감을 보여 주는 사례다.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단체인 편협의 운영위원회는 전국 55개 신문 방송 통신사의 편집·보도국장으로 구성된다. 이 중 47개 회원사가 정부의 방침을 언론 탄압 조치로 규정하고 철회를 요구한 것은 정부의 언론정책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헌법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점을 천명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날 결의문에서 “정부에 대한 취재와 접근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조치는 취재한 사실의 보도에 개입하려 했던 군사정권 시절보다 더 나쁜 언론 탄압”이라고 규정했다. 군사정권 시절 기사의 게재를 통제하기는 했으나 현 정권처럼 취재 자체를 원천 봉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취재제한 조치에 대한 언론계의 비판은 경찰서나 정부 부처 등 취재 일선 기자들의 성명에서 시작됐으며 이날 편집·보도국장들이 이에 동참한 것은 전 언론계가 정부의 언론 탄압에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

편협 변용식(조선일보 편집인) 회장은 “편협이 그동안 정부의 취재 봉쇄 조치와 관련해 3차례의 성명서를 냈지만 정부의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이 더는 참을 수 없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판단하에 편집·보도국장 회의를 요청했다”며 “이 모임은 일선에서 정부의 취재 봉쇄에 맞서 싸우는 후배 기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장단 토론회에서는 “군사정권 때는 취재한 것을 쓰지 못하도록 했으나 지금은 정부에 대한 접근과 취재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며 “정부 조치에 대해 세분화해 대처하지 말고 정부의 발상과 조치 모두에 대해 포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 참석자는 “언론이 취재 관행을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그런 개선이 정부의 조치에 의해 타율적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며 “언론이 정부의 이런 강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후대까지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편집·보도국장들은 “정부와 언론의 대립 국면이 마치 정부의 언론 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 다툼이 있다는 수준으로 국민에게 잘못 비칠 수 있다”며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언론의 접근을 막아 장막 뒤에 숨은 채 국민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정부의 조치는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위반이고 정부의 기본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므로 언론이 결코 응해서는 안 되며 언론사들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생존권을 위해 공동 노력하자는 데 합의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참석 언론사(28개사)=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헤럴드경제

코리아타임스 연합뉴스 SBS CBSMBNYTN경기일보 광주매일

대구일보 대전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전남일보 전북도민일보

제주일보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일보

위임 언론사(19개사)=내일신문 서울경제 서울신문

한국경제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전자신문

강원도민일보 강원일보 광남일보 광주일보 국제신문 전라일보

전북일보 전주일보 제민일보 중부일보 한라일보

(중앙지-방송-지방지 가나다순)

■편집-보도국장 긴급회의 결의문

정부가 내놓은 반민주적인 취재 봉쇄 조치들에 맞서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일선 기자들의 외침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전국 언론사의 취재 편집 보도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취재 봉쇄 조치와 이로 인해 빚어진 취재 현장의 비정상적인 갈등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기자들의 부처 출입과 공무원 대면 취재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것에서부터 기자들을 부처별 브리핑룸에서 쫓아내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른 부처들을 섞어 놓은 통합 브리핑룸에 몰아넣고 전자칩을 부착한 통합브리핑룸 출입기자증을 발급하려던 것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조치는 결국 국정 정보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을 가로막으려는 일관된 목적을 지닌 것임을 확인하고 이를 위중한 언론 탄압으로 규정한다.

정부에 대한 취재 자체, 접근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이러한 조치는 취재한 사실의 보도에 개입하려 했던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 탄압이다.

정부는 이런 조치들을 대언론 창구를 단일화해 국정 홍보의 혼란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정부가 언론의 감시 대상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의 의도는 불리한 것은 숨기고 유리한 것만 알리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는 특권지대가 아니다. 납세자들은 정책의 수립 과정에서부터 집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를 투명하게 알 권리가 있다.

이런 권리를 지닌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대신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마치 정부가 시혜를 베푸는 양 이렇게 취재하는 건 되고 저렇게 취재하는 건 안된다는 식으로 나서는 것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오랜 독재정권의 언론 탄압에 저항하면서 이 정도의 언론 자유나마 누릴 수 있도록 헌신해 온 선배 언론인들과 국민의 성원을 가슴 깊이 새겨 온 우리는 이번 사태를 맞아 역시 언론 자유는 구걸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무릅쓰고 쟁취하는 것임을 새삼 절감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첫째, 우리는 일선에서 정부의 취재 봉쇄 조치들을 저지하러 나선 기자들의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정부는 일련의 언론 탄압 조치들을 즉각 전면 철회하라.

둘째, 우리는 언론인으로서 이번에 반민주적인 언론 탄압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해 온 당국자들의 역사적인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이들을 엄중 문책할 것을 요구한다.

셋째, 우리는 앞으로 어떤 어려움과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정부의 탄압을 막아 내 국민의 알 권리를 수호할 것을 다짐한다. 정부의 취재 봉쇄 조치들은 일절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우리는 정부가 우리의 진심 어린 요구를 외면할 경우 신속하게 추가 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공정하고 충실한 보도를 위해 더 한층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아울러 언론의 취재 관행을 되돌아보고 이의 개선에도 힘쓰면서 흔들림 없이 언론의 정도를 걸어 나갈 것이다.

2007년 8월 30일 전국 신문 방송 통신 편집 보도국장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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