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8년 막사이사이상 첫 시상

  • 입력 2007년 8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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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3월 17일 필리핀 세부를 출발해 마닐라로 향하던 비행기 한 대가 실종됐다. 필리핀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비행기에 대통령이 타고 있었기 때문.

이날 오후 필리핀 신문들은 비행기가 세부의 한 산에 부딪혀 탑승객 27명 가운데 26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불행하게도 대통령은 사망자 명단에 있었다.

라몬 막사이사이. 지금까지도 필리핀에서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그는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50세라는 나이는 주변 사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장례식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를 추모하는 필리핀의 한 인터넷 사이트는 장례식에 온 사람이 약 200만 명에 이른다고 소개하고 있다.

막사이사이는 국민의 사랑을 받기에 앞서 국민을 사랑한 대통령이었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1953년 12월 30일 대통령 취임사)

어쩌면 그는 ‘마케팅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현대 마케팅 이론의 핵심을 미리 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숨진 지 한 달여 뒤 미국의 ‘록펠러 형제 기금(RBF)’은 필리핀 정부에 서신을 보냈다. 그의 업적과 공로를 기리기 위해 막사이사이상(賞)을 제정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필리핀 정부는 흔쾌히 동의했다.

막사이사이상은 1958년부터 △정부 서비스 △공공 봉사 △공동체 리더십 △저널리즘, 문학 △국제 화합 등 5개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인 아시아인과 단체에 주어지고 있다. 2000년부터는 신세대 지도자 부문의 상도 신설됐다.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는 별칭이 붙은 막사이사이상 수상식은 매년 8월 31일 마닐라에서 열린다. 이날은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생일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 오후 4시 반(현지 시간). 우리나라의 김선태 목사가 공공 봉사상을 받는다. 김 목사는 본인 스스로가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해 2만7000여 명의 시각장애인에게 무료 시술을 해주는 등 동료 시각장애인에게 ‘빛’이 돼 왔다.

1950년대 초반 공산 게릴라가 들끓고 부패가 만연했던 필리핀에서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국민의 빛이었던 것처럼.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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