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로 버무린 밥 그만 먹고 싶다고요

  • 입력 2007년 8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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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가축은 유럽이나 미국의 가축보다 항생제를 많게는 10배나 더 먹는다. 국내 항생제 판매량의 절반 정도가 사람이 아니라 동물에게 사용된다는 보고도 있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가축에 대한 항생제 남용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는 동물에 대한 항생제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점점 강력해지는 세균

항생제는 미생물을 죽이거나 증식을 억제하는 약물. 동물 사료에 넣으면 질병을 예방·치료할 수 있고 생산성이 향상되며 대규모 사육도 가능하다.

그러나 항생제를 오랫동안 많이 투여하면 일부 성분이 동물 몸속에 쌓인다. 이런 성분이 고기나 계란 같은 식품을 통해 사람 몸에 들어오면 피부질환이나 심한 경우 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

항생제를 자주 접한 세균은 점점 똑똑해진다. 스스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항생제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항생제를 아예 분해해 버릴 정도로 강력한 ‘슈퍼세균(항생제 내성균)’으로 바뀌는 것. 이렇게 되면 실제로 병에 걸려 항생제를 써도 약발이 잘 듣지 않는다. 사람이 식품을 통해 항생제 성분을 간접적으로 먹어도 내성이 생길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조사 결과 식중독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은 페니실린에, 대장균은 테트라사이클린에 내성이 높다. 테트라사이클린이 주성분인 항생제를 먹어도 대장균이 잘 죽지 않는다는 얘기다.

항생제내성균주은행을 운영하는 서울여대 환경생명과학부 이연희 교수는 “항생제 내성균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라며 “과거에는 새 항생제가 쓰인 지 20∼30년 뒤 내성균이 생겼는데, 이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2, 3년이 지나 내성균이 출현하기도 한다. 이에 과학자들은 항생제를 대체할 물질을 찾는 데 나섰다.

○ 자연에서 항생제 대체물질 찾기

보통 항생제는 화학합성으로 만들거나 미생물을 인공배양하면서 생산되는 물질을 사용한다. 반면 항생제 대체제 연구자들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항균물질로 눈을 돌리고 있다.

생물은 미생물이 침입했을 때 자신을 보호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여기에 작용하는 물질을 추출하면 항생제 대체제가 된다. 황금, 감초, 목단피 같은 한약재에 이런 물질이 많다. 게나 가재, 새우의 껍데기에서 추출한 키토산은 세균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

간장이나 된장, 치즈, 요구르트, 젓갈, 김치 같은 발효식품도 항생제 대체제의 좋은 원료다. 발효식품에는 항균작용을 하는 작은 단백질 조각(펩타이드)이 들어있다. 이를 분리하면 항생제 대체제로 이용할 수 있다.

생물이나 식품 추출물은 기존 항생제처럼 다양한 세균을 무작위로 죽여 유익한 균까지 해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특정 세균만 죽이는 항생제 대체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바이러스의 일종인 박테리오파지. 세균에 기생해 살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세균 몸을 뚫고 나온다. 이 과정에서 세균이 파괴되는 것. 박테리오파지는 수천 가지가 있는데, 각각 서로 다른 특정 세균에만 기생한다.

벤처기업 인트론바이오테크놀로지 강상현 상무는 “박테리오파지는 바닷물과 수돗물, 인체에도 이미 많아 사람에게 해롭지 않다는 게 증명돼 있다”며 “항생제 대체제로 개발하면 내성이나 체내 잔류 가능성도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균이 내성을 갖기 위해 유전자를 바꾸면 거기에 기생하는 박테리오파지도 따라서 자신을 변형해 살아남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현재 젖소유방염의 원인인 황색포도상구균을 파괴하는 박테리오파지를 확보하고 실제 젖소를 대상으로 시험 중이다.

○ 사육환경 개선이 먼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동물 항생제를 아무데서나 쉽게 구입하지 못하고 수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사용하게 돼 있다.

강원대 수의학과 김두 교수는 “약의 종류나 용량을 정확히 알고 써야 남용을 막을 수 있다”며 “항생제 사용보다 가축 사육환경 개선이 질병 예방의 최우선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사육 공간이 좁으면 가축이 밀집돼 지저분해져서 세균이 잘 번식한다. 국내에서도 동물별로 사육 최소면적을 정해놓고 있으나, 강제성 없는 권장사항일 뿐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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