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강원 인제군 방태산. 땀을 줄줄 흘리면서 숲을 뒤지는 한 남자가 있었다. 겉보기엔 심마니 같은데 그가 망태에 곱게 담은 것은 산삼이 아니라 함박꽃나무에서 피는 하얀 꽃 ‘천녀목란’이었다.
숲 속을 훑고 다니는 주인공은 코리아나화장품 송파기술연구소 신소재연구팀 이강태(38) 연구원. 그는 11년째 화장품에 쓰이는 천연 원료를 찾고 있다.
참살이(웰빙) 바람을 타고 한방화장품과 차 음료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새로운 천연소재 발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구원들은 연구실을 벗어나 산과 들에서 신소재를 찾는 ‘현대판 심마니’로 활약하고 있다.
이 연구원이 채취한 천녀목란은 올해 2월에 새로 선보인 한방화장품 ‘자인’의 성분으로 1kg에 100만 원이나 나간다. 해발 1200m 이상의 공기 좋고 물 맑은 산속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직접 산에 오른 것이다.
그는 “한방화장품에 쓰일 신소재를 찾기 위해 주말이면 전국의 산과 들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동의보감’, ‘본초강목’ 같은 옛 서적을 파고든다”고 했다.
남양유업 중앙연구소 음료개발팀 김상규(34) 연구원은 ‘몸이 가벼워지는 시간 17차(茶)’ 개발의 주역이다. 이 음료는 시판 2년 만에 3억 병이 팔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김 연구원은 영지, 상황, 홍화씨 등 17가지 차 원료를 찾기 위해 3년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충남 공주시, 대전 등 전국의 한약재상을 누비며 수백 가지 원료를 조사했다. 그는 17차에 이어 메밀, 옥수수 수염, 결명자 등을 원료로 한 차음료를 잇달아 내놨다.
CJ 신선식품센터 박홍욱(33) 연구원은 유기농 두부의 원료로 쓰일 유기농 콩을 찾아 미국 중국 호주 등 해외를 돌았다. 대량생산에 적합한 대규모 유기농 콩 재배지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그는 4월 호주 퀸즐랜드에서 유전자조작농산물(GMO)이 전혀 없는 유기농 콩 농장을 찾아 계약을 했다.
코리아나화장품 송파기술연구소 이건국 소장은 “천연원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해당 원료를 쓴 제품이 주목을 받으면서 연구원들이 연구실을 떠나 자연 현장을 발로 뛰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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