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옥자]새로운 사회세력 결집을 꿈꾸며

  • 입력 2007년 8월 30일 02시 59분


코멘트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긴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일정한 법칙성이 있다. 그래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춰 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찍이 서양 학자들은 서양 사회가 거쳐 온 원시 공동체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변화 과정이 동양 사회에 보이지 않고 왕조의 교체만 있었을 뿐 정체돼 있었다는 정체성이론을 내세워 동양 사회의 후진성을 강조했다. 이상하게도 이런 발전 과정(?)을 거친 국가는 서양에서도 제국주의를 자행한 나라이고 기타 서양 여러 나라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왕조의 교체가 곧 역성혁명이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왕조가 바뀔 때마다 이미 전 왕조 말기에 새로운 사회세력이 등장하여 새 왕조 건설의 추동력이 되었으니 나말여초의 육두품, 여말선초의 향리층이 그것이다.

조선왕조 말기에 새로운 사회계층으로 성장한 중인층의 등장은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예고했다. 이들은 모두 당대의 차(次)지식층이자 한계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왕조 바뀔 때마다 新지식층 등장

신라 말의 육두품은 골품제도에 묶여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들은 당나라에 건너가 유학을 전공한 신지식층으로 신라 사회의 고대적 잔재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비전으로 새 왕조를 꿈꾸었다. 최치원을 비롯한 최언위 최승우 등 경주 최씨가 대표적이다. 육두품 출신은 고려 왕조 건설의 두뇌집단이었다.

고려 말에는 향리층 출신의 신진사대부가 새로운 이상사회의 건설을 꿈꿨다. 이들은 국가 종교로서 기득권의 온상이 된 불교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신학문인 성리학을 전공하고 그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지향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고려 귀족사회의 한계인으로 귀족계층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예리한 비판의식을 공유했다.

향리층 출신의 신진사대부는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노선을 분립하여 좌파인 정도전 일파는 혁명을 선택했다. 역성혁명에 성공한 좌파는 자신들의 학문인 성리학을 국학으로 채택하고 그 이념을 국시로 하였다.

정도전은 개국공신으로 혁명을 완성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그의 왕조 설계는 후속 세대에 의해 보완되고 성리학적 유교 국가의 틀을 공고하게 다지게 되었다.

조선 말기의 중인층은 조선 양반사회에서 차지식층이자 한계인이었다. 이들은 의관이나 역관 등 기술직 중인을 비롯해 일선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서리, 즉 아전과 양반의 첩자로 기술직을 전수한 서얼 등 양반에서 신분 하락한 경우와 지방 향교의 교생 등 평민에서 신분 상승한 경우도 있어서 다양한 구성을 보였지만 신분 하락과 신분 상승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 중간 계층이었다.

중인 계층의 핵심인 기술직 중인은 의관과 역관 이외에 화원 산사 율사 등으로 오늘날의 의사 통역관 화가 회계사 법조인 등이니 현대에 와서 가장 각광받는 직업을 세습하는 이들이었다. 지금의 전문직에 해당하는 이들이 당시에는 한계인으로 19세기 조선왕조가 사양길에 접어들자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

21세기 테크노크라트 활약 기대

이미 시의성을 상실한 성리학 대신 당대의 신학문인 북학을 공부하며 세계화를 지향하던 중인 계층은 양반 사대부에 대체되는 새로운 사회계층으로 성장했고 이는 조선사회 내부의 역동적인 자기 극복 과정이었다.

이들이 새 시대를 열 만한 자기 역량을 충분하게 갖추기 전에 밀려온 외세의 침략으로 이들의 이상사회 건설의 꿈은 좌절됐고 이들의 문화적 역량은 일제의 문화정책에 함몰되었다.

그 후속 세대라 할 수 있는 테크노크라트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과연 무슨 꿈을 실현했는가? 새로운 사회 세력의 결집을 기대해 본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