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사태 장기화에 온건파 힘 얻었을 가능성

  • 입력 2007년 8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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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사태 초기부터 탈레반이 요구해 온 것은 ‘인질과 탈레반 죄수의 맞교환’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28일 밝힌 협상 조건에 탈레반 죄수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인질 전원 석방이라는 극적 합의가 이뤄진 것도 탈레반이 동료 죄수 석방이라는 조건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무엇보다 탈레반이 죄수 석방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죄수 석방 권한을 가진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피랍 사태 초기부터 ‘절대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탈레반 대표단도 이날 “수감자 석방은 한국 정부의 권한 밖인 것을 잘 인식하고 이를 석방 조건으로 내걸지 않았다”고 밝혔다.

탈레반 내부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명분에 매달려 피랍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사태 해결을 원하는 온건파가 힘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인질 관리의 어려움과 군사작전 압박, 이슬람 사회의 비난도 온건파에 힘을 실어 주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탈레반이 실제 얻은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프간 주둔 한국군의 연내 철수는 이미 예정된 일정이다. 또 한국 정부는 피랍 사태 직후 한국인의 아프간 입국을 금지하고 이미 아프간에서 활동하던 비정부기구(NGO) 요원들까지 서둘러 철수시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탈레반 죄수 몇 명을 드러나지 않게 풀어 주거나 몸값 등 실리를 챙겨 주는 이면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동안 한국과 탈레반의 협상 과정에서는 몸값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특히 일본 아사히신문은 26일 아프간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이 인질 1명당 1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또 라마단을 앞두고 아프간 정부가 일부 탈레반 죄수의 형기를 단축해 주는 방식으로 탈레반 측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형태의 ‘라마단 특사 해법’도 제기된 바 있다.

물론 탈레반이 당초 요구를 관철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명분상으로 밑지는 협상은 아니었다는 지적도 많다.

적신월사의 중재로 한국 정부와 테이블에 마주 앉음으로써 ‘테러조직’에서 당당한 협상 파트너로 위상을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마지막 대면 협상에는 인도네시아 외교관 2명을 ‘합의 보증인’으로 참석시키기도 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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