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맞교환, 한국 권한 밖” 설득 먹힌듯

  • 입력 2007년 8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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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박했던 협상 과정-뒷얘기

정부가 28일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피랍자 19명 전원 석방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노력을 통해 ‘피랍자와 탈레반 죄수 맞교환’이라는 탈레반의 요구 조건을 철회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탈레반과의 대면접촉은 물론 아프간 지역 원로와 이슬람 사회, 국제사회 등을 총동원해 탈레반 죄수 석방은 한국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우리 권한 밖이라는 설득이 주효”=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이날 “탈레반 죄수를 풀어주는 것은 한국 정부의 권한 밖에 있는 문제라는 것을 (탈레반 측에) 충분히 설명했고,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또 “납치단체 측도 많은 인질을 장기간 붙잡고 있는 데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탈레반 죄수 석방을 위해 아프간 정부 및 미국을 최대한 설득했지만 한계가 있었다는 정부의 주장을 탈레반이 결국 받아들였다는 것.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3개국 순방에 나선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종 합의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견해도 있다.

16일 대면접촉을 마지막으로 지지부진했던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이 22, 23일경 실마리를 찾으면서 ‘중요한 변화’가 생겼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송 장관이 직접 탈레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슬람 국가들을 찾았다는 것. 송 장관이 이번에 방문한 중동 3개국은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집권했을 당시 탈레반 정부를 승인했던 나라들이다.

송 장관은 실제 압둘라 사우디 국왕을 직접 만나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압둘라 국왕에게서 피랍 사태 해결을 위해 사우디가 협력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기도 했다. ▽순탄치만은 않았던 협상 과정=정부는 지난달 19일 피랍 사태가 발생한 직후 외교통상부에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21일 현지에 정부 대책반을 파견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사건 초기에 현지에 급파된 조중표 외교부 제1차관과 문하영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 등은 탈레반과의 대화채널을 구축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했다. 또 정부는 아프간 정부가 군사작전 가능성을 내비치자 아프간 주둔 다국적군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등을 통해 아프간 정부를 설득함으로써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탈레반이 사건 초기에 피랍자 2명을 잇달아 살해하는 등 협상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지난달 25일 배형규 목사가 살해된 직후 정부가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특사로 파견했음에도 같은 달 31일 심성민 씨가 추가 살해되자 정부의 협상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아프간 지역 사회와 국내외 언론, 국제사회 등에 “순수한 봉사활동을 위해 찾은 외국인을 납치하는 것은 부당하며, 여성을 인질로 삼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도 어긋난다”는 논리로 적극적인 여론 형성에 나섰다. 이런 노력으로 10일 탈레반과 첫 대면 접촉이 시작됐고, 3일 뒤 김경자, 김지나 씨 등 여성 인질 2명의 석방을 이끌어 내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 인도네시아도 협상 참여

한국과 탈레반이 28일 인질 19명 전원 석방에 합의한 자리에는 인도네시아 외교관 2명이 ‘보증인’으로 참여했다.

이는 인구 2억2000만 명 가운데 85%가 이슬람 교인으로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영향력을 고려한 한국과 탈레반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참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타’라는 관측도 있다.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는 사우디가 제3자로서 협상장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사우디 정부가 거부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사우디는 이번 합의 중재에 상당한 구실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우디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을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탈레반 측과의 관계도 미묘해 공개적으로 나서는 것은 망설였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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