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세속주의(世俗主義)

  • 입력 2007년 8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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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가에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태풍이 불고 있다. 저자는 20여 년 전 ‘이기적 유전자’를 써 진화생물학계에 격렬한 논쟁을 초래한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쉽지 않은 내용에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출판 한 달 만에 4만3000부가 팔려 인문학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인문서적은 7000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 대접을 받는다. 1993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유홍준) 이후 인문서적 최대의 돌풍이다. 영어권 국가에서도 물론 베스트셀러다.

▷‘만들어진 신’은 종교가 없었다면 9·11테러도, 이라크전쟁도, 십자군도, 마녀사냥도, 인도 분할도, 유대인 학살도, 여성 할례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신론과 세속주의의 기반 위에서 성역으로 취급되던 종교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인간의 합리성을 신뢰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종교의 간섭을 배제한다. 사회구성원들의 문제는 종교가 아닌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교(政敎)분리의 역사는 인류의 문명사와 일치한다.

▷요즘 터키에서도 친(親)이슬람주의자인 압둘라 귈 외교장관의 대통령 당선으로 세속주의 논쟁이 가열될 조짐이다. 귈 당선자의 부인이 히잡을 주문하자 관공서나 학교에서의 히잡 착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터키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야당, 군부, 법조계는 정치의 이슬람 회귀 조짐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귈 당선자도 “헌법이 정한 세속주의 원칙을 존중할 것”이라며 한걸음 물러섰다.

▷제1차 세계대전 전승국으로부터 터키 영토를 지킨 후 터키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은 종교국가로는 미래가 없다고 봤다. 그래서 국민의 99%가 이슬람이지만 칼리프 및 술탄 제도를 폐지하고 정교분리를 헌법에 못 박았다. 터키를 이슬람권에서 유일한 서구식 현대 국가로 바꾼 그는 국부(國父) 칭호를 받는 등 국민의 절대적 존경을 받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은 세속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인질들을 풀어주기로 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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