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참사 2주년… 뉴올리언스 수해복구 제자리

  • 입력 2007년 8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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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연방재난관리청과 뉴올리언스 시 당국이 책임공방을 하며 싸웠지만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정부에서 돈이 나와도 왜 그렇게 느린지, 언론에서 하도 난리치니 조금은 나아지더군요…."

미국 뉴올리언스 교민인 이상호(전 카트리나·리타 피해자대책위원장) 씨의 말이다. 이 씨는 27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인들은 빨리 움직인 결과 90% 이상 복구가 됐다"며 "하지만 미국이 원래 빨리 움직이는 곳이 아니어서인지 뉴올리언스 전체적으론 복구가 예상보다 상당히 느리고, 지금으로선 언제 정상을 되찾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씨의 말처럼 29일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지 2년이 됐지만 뉴올리언스는 여전히 수마(水魔)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방 정부가 1140억 달러(약 107조원)의 복구비를 쏟아 부었지만 관료주의와 부패의 벽에 걸려 복구는 지지부진하다.

1800여 명의 사망자와 80여만 명의 이재민을 낸 2년 전 카트리나의 엄습 이후의 2년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사회의 안쪽 한 구석이 관료주의와 인종갈등, 너무도 편차가 큰 민도(民度) 등으로 인해 곪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기간이었다.

▽뉴올리언스의 오늘= 뉴올리언스 일대 중산층 거주 지역에선 요즘 주민 자경단(自警團)을 결성하는 곳이 늘고 있다. 가구마다 월 20~30달러가량을 내고 돌아가며 주야간 순찰을 돈다. 시 경찰청이 지난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절도 등 범죄율이 지난해 카트리나 이전에 비해 73%포인트 늘었다.

물에 잠긴 집을 떠나 흩어졌던 주민들의 복귀율은 지난해 초 60.3%에서 올 7월 현재 66%(주변 지역 제외한 뉴올리언스 시 기준)로 조금 높아졌다. 하지만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가족이 여전히 4만2250가구에 달한다. 의료 인력이 떠나 병원의 3분의 1은 문을 닫은 상태다. 경찰서도 여전히 트레일러 신세다.

제방건설에 17억 달러가 투입했지만 여전히 상당지역은 침수 위험지역이다. 광범위한 홍수 대책의 완결은 2011년으로 예정돼 있는데 아직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이런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다. 행정기관의 비효율적 일처리로 인해 피해복구비를 타내려면 온갖 서류를 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오랜 기간 입씨름을 해야 한다.

정부의 공식 원조 프로그램인 '로드 홈'에 지원을 요청한 사람은 18만4000명이지만 실제 지원을 받은 사람은 4만3000명에 그쳤다.

피해 규모 조작, 보상비 빼돌리기 등 민관 할 것 없이 비리도 난무했다. 지난해 중순 현재 연방검찰이 기소한 사람은 교육위원회, 시 위원회 등의 고위간부들을 포함해 355명에 달했다.

다만 총 1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되는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들, 민간 구호단체들의 활동은 돋보였다는 게 미 언론들의 평가다.

▽교민 피해 복구= 이상호 씨는 "전체적으로 겉으로 보이는 곳은 대체로 정리됐고 나머지 지역은 불도저로 밀어내고 새로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인 전체로는 1억달러 가량의 피해를 봤고 보상금은 3000만 달러 정도를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카트리나 이전에 2000여명으로 추산되던 뉴올리언스 일대 한인 인구는 1700명 정도로 약간 줄었다 . 하지만 떠난 사람들은 주로 유학생과 단기 체류자들이다. 다만 전체 400여 한인 세대 중 20가구 가량은 아직도 이전의 사업기반을 회복하지 못한 채 임시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며 재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책임 논쟁=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9일 뉴올리언스를 방문, 지속적인 복구지원을 다짐한다. 바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시작으로 힐러리 클린턴 의원, 존 에드워즈 전 의원 등 주요 대선 후보들도 경쟁적으로 뉴올리언스를 찾아 부시 행정부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은 카트리나 문제를 주요 대선 이슈로 의제화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언론과 학계의 비판도 주로 부시 행정부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아무도 입 밖에 내지는 못하지만 일부 미국 지방정부의 행정 퀄리티는 제3세계 수준에 불과하고 민도(民度)도 매우 낮은 수준인 게 미국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남부 지역은 부패에 대한 민감도도 동부나 서부의 대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사실 연방정부의 인력도 재무부, 국무부를 비롯한 일부 부처를 제외하곤 민간 부문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 우수한 인재들은 월가, 투자은행 등 민간부문으로 빠지고 공직 진출은 나중에 간부직으로 영입돼 한시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코스로 생각한다. 일선 공무원 가운데는 승진에 대한 별다른 욕구 없이 안정된 직장에 만족하며 소극적 자세로 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흑인 비율이 높은) 뉴올리언스이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소홀했다고만 몰아붙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조지워싱턴대 박윤식 교수는 "국민 대부분이 더 잘살아보겠다는 상향(上向) 의욕이 강한 한국 사회와 달리 미국은 내부적으로 편차가 크다"며 "카트리나 복구가 지지부진한 이유 가운데는 그런 요인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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