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재 前비서관 ‘수뢰 만남’ 주선…당시 상황과 커지는 의혹

  • 입력 2007년 8월 29일 03시 01분


코멘트
세 사람이 만난 음식점지난해 8월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정상곤 당시 부산국세청장, 부산의 건설업체 사주 김모 씨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서울 종로구의 한정식집. 박경모 기자
세 사람이 만난 음식점
지난해 8월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정상곤 당시 부산국세청장, 부산의 건설업체 사주 김모 씨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서울 종로구의 한정식집. 박경모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인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지난해 8월 부산 지역 건설업체 사장 김모 씨에게 이 업체의 세금 탈루 혐의를 조사하던 부산국세청 정상곤 전 청장(현 국세청 부동산납세관리국장)을 소개했으며, 두 사람 간에 현금 1억 원이 오고간 식사 자리에 동석한 사실이 드러나자 정 전 비서관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씨가 정 전 비서관을 ‘중간 고리’로 부산국세청에 로비를 시도한 만큼 정 전 비서관이 김 씨의 뇌물 공여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청와대는 정 전 비서관의 연루 문제에 대한 사전 인지 여부에 대해 줄곧 “동아일보 보도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고 부인하다 “민정수석실에서 정보를 파악한 뒤 정 전 비서관의 사표를 수리해도 문제가 없는지 검찰에 확인했다”고 뒤집는 해프닝을 벌였다. 청와대는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비서관 신분으로 부적절한 자리를 주선했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다 끝난 일”이라고 애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

○ “부산국세청장 소개해 달라”

검찰에 따르면 부산 지역 재개발사업 시행업체인 H사 사주인 김 씨는 지난해 8월 정 전 비서관에게 “부산국세청장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김 씨는 세금 탈루와 관련해 부산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었다.

김 씨 소유 H사와 계열사가 부산 연제구 연산동 아파트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실제로 사지 않은 땅을 산 것처럼 위장하거나 땅값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세금을 탈루한 사실이 부산국세청에 적발되자 노 대통령의 측근인 정 전 비서관을 통해 정 전 청장과 접촉하려고 했다는 것. 김 씨와 정 전 비서관은 지인의 소개로 7, 8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정 전 비서관은 식사를 함께하기 전에 두 사람을 연결시켜 줬다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이 노 대통령의 ‘부산파’ 핵심 참모란 것은 잘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정 전 청장은 정 전 비서관이 소개한 사람이 세무조사와 관련된 인물이지만 자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 1억 원 돈가방 들고 상경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26일 서울 종로구 한정식집에서 정 전 비서관과 김 씨, 정 전 청장이 함께 식사를 했다. 정 전 청장은 주말이어서 서울 집에 와 있었다.

정 전 비서관이 먼저 식사 자리를 떴고 김 씨와 정 전 청장이 10여 분간 함께 있다 일어섰다. 정 전 청장이 택시에 오르자 김 씨는 1억 원이 든 가방을 뒷좌석에 밀어넣었다. 김 씨의 비서가 현금 1만 원권으로 1억 원을 가짜 명품 가방에 담아 비행기를 타고 상경해 음식점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

김 씨가 이처럼 ‘미리 돈가방을 준비해온 사실을 정 전 비서관이 과연 몰랐을까’라는 의혹이 남는다.

검찰 관계자는 “정 전 비서관이 먼저 자리를 뜨고 두 사람만 함께 있었던 시간은 10분가량밖에 되지 않았다는 진술이 확보돼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청장은 돈가방을 돌려주지 않았고, 건설업체 H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무마해 줬다. 이 과정에서 정 전 비서관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정 전 비서관 형사처벌, 왜 못하나

정 전 비서관은 현직 대통령비서관이라는 고위 공직자의 신분으로 부산국세청의 탈루 조사를 받고 있던 건설업체 대표, 탈루 조사를 하던 부산국세청장과 식사를 함께했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해 8월 9일 대통령의전비서관에 임명됐고, 식사는 같은 달 26일 이뤄졌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알선수재’란 해당 사안을 주선하는 조건으로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정 전 비서관이 이 사안과 관련해 김 씨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진술이나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 검찰은 또 정 전 비서관은 금품이 오가기 10분 전쯤 자리를 떠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수사는 더 진행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정 전 비서관을 처벌할 수 있는 현행법이 없다”며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지만 고위 공직자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도덕성 문제는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이상한 청와대, “이미 다 끝난 일”

청와대는 정 전 비서관의 사건은 “이미 끝난 일”이라는 논리로 사건의 파장을 경계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가 정 전 비서관 사건을 자체 조사하느냐’는 질문에 “이미 끝난 일이고 검찰 수사에서도 그렇게 정리가 된 것을, 더더욱 그만둔 사람에 대한 문제를 청와대가 다시 끄집어내서 조사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현직이었으나 이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천 대변인은 대통령비서관이란 신분으로 부적절한 회동을 주선한 의혹을 받는 데 대한 의견을 물어도 “무엇이 사실인지는 당사자가 설명해야 할 부분이고 그 성격이 어떤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는 함부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비켜나갔다.

청와대는 또 정 전 비서관의 연루 사실을 청와대가 알고 정 전 비서관 사표 수리 시점에 검찰에 전화를 걸었는지를 묻자 오후 2시 30분 생방송 브리핑 때 “청와대 관련자라 해도 검찰은 수사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사표를 수리할 때 검찰에 물어본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다. 왜 물어보나”라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 오후 6시경 “민정수석실이 알게 돼 사표를 수리해도 문제가 없겠는지 검찰에 전화를 걸었다”고 정정했다.

청와대는 정 전 청장이 구속된 다음 날인 10일 정 비서관의 사표가 수리된 데 대해 “이번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은 이달 초 지인들과 만나 “나는 당분간 청와대에서 더 근무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인은 “정 전 비서관이 만난 지 며칠 안 돼 사표를 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