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책을 만지면 예술이 된다

  • 입력 2007년 8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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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는 “책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의아스럽던 마음도 그의 책을 보면 수긍이 간다. ‘초서 작품집’(위)은 문학적인 내용도 빛나지만 모리스는 이를 한 차원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 출판사 로고(왼쪽)나 간행본 판면의 일부(오른쪽)도 마찬가지다. 사진 제공 한길사
윌리엄 모리스는 “책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의아스럽던 마음도 그의 책을 보면 수긍이 간다. ‘초서 작품집’(위)은 문학적인 내용도 빛나지만 모리스는 이를 한 차원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 출판사 로고(왼쪽)나 간행본 판면의 일부(오른쪽)도 마찬가지다. 사진 제공 한길사
푸르렀다, 100년도 넘은 책이.

삼베로 만든 종이. 포도 넝쿨처럼 섬세한 배경 디자인. 겨우 2색인데도 화려함은 무지개보다 찬란했다. 한 페이지 한 글자마다 오롯한 대가(大家)의 편린. ‘출판의 마에스트로’라 불릴 법했다.

윌리엄 모리스. 19세기 영국 공예운동을 주도한 수공예책의 최고 명장이다. 그런 거장의 작품을 국내에서 만나 볼 기회가 생긴다.

다음 달 1일부터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열리는 전시회 ‘윌리엄 모리스, 책으로 펼치는 유토피아’. 모리스가 말년에 세운 출판사 ‘캠스콧 프레스’에서 나온 53종 66권 전집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캠스콧 프레스 전집 전시는 처음이다.

28일 전시회장에서 만난 김언호(62) 한길사 대표는 차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기된 표정이었다. “출판인들에게 윌리엄 모리스는 꿈의 이름입니다. 그가 추구한 아름다운 책의 세계와 정신은 출판인이 닿고자 하는 희망이자 이상이죠.”

캠스콧 프레스의 책은 해외에서도 출판 관계자와 수집가들의 표적이다.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희소성이 크다. 세계의 일류 도서관이라면 반드시 소장해야 하는 ‘작품’들이다. 1894년에 인쇄한 ‘속세 염리의 시간’은 150부밖에 찍지 않았다. 다른 책도 많아야 500부 정도. 김 대표는 유럽과 일본에서 발품을 팔아 10여 년 만에 전집을 모았다. “시가로 치면 10억 원은 넘는다”는 귀띔이다.

출판계에서 장서가로 소문난 김 대표의 윌리엄 모리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헤이리에 지은 전시관 이름도 ‘북뮤지엄 윌리엄 모리스’다. 그러나 김 대표는 모리스의 책이 화폐 가치로 환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위대한 삶이 이룩한 예술작품을 돈으로 따질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책이 지닌 모든 것이 엄연한 창작의 소산이다. 활자체는 모리스가 고딕 양식 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 배경 무늬는 본인이, 삽화는 친구이자 동료인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가 그렸다. 고서의 풍취를 살리려 대량생산하는 펄프를 버리고 삼베를 원료로 한 ‘수록지(手(녹,록)紙)’를 썼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건 ‘초서 작품집’(1896)이다. ‘캔터베리 이야기’로 유명한 시인 제프리 초서의 작품집이다. 모리스가 “죽기 전에 완벽하게 인쇄하기를 원했다”고 전해진다. 서양사학자 이광주 씨는 “서양 최초 금속활자 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쇄본이다”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윌리엄 모리스의 책은 현대 디지털 시대가 범접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극치”라면서 “좋은 책은 시대를 뛰어넘어 세상을 진동시키는 역량이 됨을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말까지. 031-949-9305∼6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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