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불친절한 항공사는 이해 못하죠

  • 입력 2007년 8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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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출발 2시간 전에는 공항에 나와 출국 수속을 마쳐야 한다기에 일찌감치 인천공항에 갔습니다.

그런데 출발이 지연되었다며 수속조차 받아주지 않은 채 기다리랍니다. 가져갈 짐이 너무나 많아 일행 46명은 꼼짝도 못한 채 그대로 공항 로비에 앉아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엔 최소한 6시간은 연착될 거라며 일단 수속을 하고 근처 호텔에서 기다리라더군요.

엉성한 호텔방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채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다 결국 7시간이 지나서야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공항 출구에는 저희들처럼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어, 그런데 또다시 “○○행 비행기는 항공사의 사정으로 연기되었습니다”라는 항공사 직원의 매우 형식적인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조금은 뻔뻔스럽게 느껴집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많은 사람이 카운터로 몰려갑니다. 당연히 항의가 없을 수 없지요.

기다리다 지친, 그리고 예정된 일정을 변경해야만 하는 승객들의 성난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떻게 보상을 할 거냐” “점심 티켓 하나로 끝낼 거냐” 등등 정말 아우성입니다.

직원은 계속 똑같은 답변을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추가 보상을 원하면 직접 소비자원에 보상을 청구하라.’

하긴 우리가 구입한 항공티켓(약관)에 ‘특별한 공지 없이도 항공 일정은 변경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으니 사실 이들에겐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이 맞지요.

결국 10시간이나 지체돼 외국 여행에서의 금쪽같은 하루가 날아갔지만 뭐라 하소연할 수도 없습니다.

항공기 운항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비행기가 지연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겠지요. 공항에선 늘 생기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 비행기를 타지 않는 소비자들에게 이런 식의 지연은 일생에 단 한 번도 겪지 않을 수 있는, 또한 원치 않는 경험일 것입니다.

물론 소비자들도 피치 못할 사정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지 소비자들이 조금 더 기대하는 것은 비록 제 시간에는 떠나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내 여행을 망쳤을지라도, 기왕이면 조금은 더 친절하게 진행 상황을 설명해 주는 최소한의 배려입니다. 그 정도의 서비스는 구매자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닐까요.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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