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내게 거짓말을 해봐’

  • 입력 2007년 8월 28일 19시 22분


코멘트
모두가 진실만 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영화 ‘라이어 라이어’에서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 변호사 플레처 리드로 분한 짐 캐리는 아들의 소원에 따라 하루 동안 거짓말을 못 하게 된다.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법정에서 거짓말을 못 하게 되자 그의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할리우드 영화가 다 그렇듯 이 영화도 해피엔딩이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벌’을 받는다면 그 결과는 재앙일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오늘은 또 누가…

독일 역사학자 볼프강 라인하르트가 말했듯 거짓말을 죄악시하기에는 공익을 위한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이 지닌 잠재적 가치가 정말 크다. 오늘 아침 기분이 별로인데도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해야 하고, 자식의 형편없는 성적표에 속이 뒤집히면서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고 격려해 줘야 한다. 그녀의 빨간색 원피스는 정말 보기 괴롭다. 그래도 면전에선 그녀의 패션감각을 칭찬해 줘야 한다.

사람은 하루 평균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그 누구도 거짓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신과 의사 조지 서번은 ‘거짓말은 제2의 천성’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속임수와 거짓말에 능숙한 것은 진화의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혹자는 거짓말을 인간의 본성보다는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그럴 법하다. 에스키모에게도 냉장고를 팔라고 마케팅 교과서는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학자 로베르트 헤틀라게는 오늘날 사회가 거짓말에 관대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요즘 거짓말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나 에티켓쯤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는 것 같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너무 자주 듣다 보니, 다른 거짓말에 대해서도 내성이 생겼다고나 할까.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거짓말 잘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정치인의 거짓말을 합리화하기까지 했다.

정치인의 거짓말에는 무심하면서도 학력에 관한 거짓말에 민감한 것은 다분히 한국적 현상으로 보인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적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학력에 대한 한국인의 한(恨)과 뿌리 깊은 열등감이 그것이다.

경제학에서는 학력을 노동시장에서의 신호 전달 행위로 본다. 어떤 사람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학력은 능력을 판정할 수 있는 효율적인 잣대로 여겨진다. 많은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애쓰는 것도 궁극적으로 고용시장에서건, 결혼시장에서건 긍정적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을 ‘간판’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오늘은 누구의 거짓말이 들통 날까’로 가슴 졸여야 하는 사회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최근 폭로 형태든, 고백 형식이든 드러나는 유명 인사들의 가짜 학력은 거짓말에 대한 관용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대학 졸업장이란 간판 없이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열린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얻어진 사회적 명성과 부(富)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학력이라는 화관(花冠)까지 쓰고자 했다.

‘신뢰’ 무너지면 성장률도 떨어져

거짓말을 고백하는 방식이나 태도도 아쉽기만 하다. 상당수가 “억울하다” “기자들이 그렇게 쓴 것”이라고 변명하거나 “우리 사회의 학력 지상주의가 더 문제”라며 화살을 외부로 돌렸다. ‘세상이 내게 거짓말을 시켰다’는 이런 인식과 태도는 가짜 학력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거짓말은 개개인이 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신뢰지수가 10% 하락하면 성장률이 0.8%포인트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무엇보다 아무리 현대사회가 거짓말에 관대해졌다고는 하지만 거짓말은 남 이전에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거짓말이 가진 일면의 진실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