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통계 제대로 읽기]성형수술 시장 급팽창하는 이유는?

  • 입력 2007년 8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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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의 사전적 뜻은 ‘상해 또는 선천적 기형으로 인한 인체의 변형이나, 미관상 보기 흉한 신체의 부분을 외관적으로 교정·회복시키는 수술’이다. 성형수술을 하려는 욕망 속에는 다른 구성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로 집단의 일원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성형의 목적이 ‘다른 구성원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로 변질되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외견상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조차 성형수술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성형수술이 얼마나 행해지고 있을까? <표1>은 성형수술 건수 자체를 보여 주지는 않지만, 성형수술과 관련된 많은 추측이 가능한 자료다. 첫째, 성형수술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수가 증가하는 것은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면서 과거보다 성형수술을 받는 건수 자체가 크게 늘었음을 추측하게 해준다. 이 외에도 성형수술 유행에 편승해서 ‘돌팔이’ 의사가 생겨나는 문제를 생각할 수도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현실을 살펴보자.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여성 중 25.8%가 미용을 위해 성형수술이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4명 중 1명이 시술을 받았다는 말이다. 남성의 경우는 5.9%로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나 최근 성형수술을 하겠다는 남성의 수도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경향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권 국가뿐만 아니라 오랜 성형 역사를 가진 미국 유럽 등 선진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성형외과 학회(ASAPS)의 2004년 통계에 의하면 1997년에서 2003년까지 성형수술 건수가 293%나 늘었다(<표2> 참조).

이처럼 성형수술 시장이 급팽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성형수술의 기술과 재료가 진보하고 안전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학적 요인 외에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들이 있다.

성형수술로 외모의 결점을 고쳐서 아름다워지고 자신감을 되찾겠다는 것은 말릴 수 없는 개인의 권리다. 수술로 외모를 바꿔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한다면 자신감을 회복하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성형수술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압력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다른 것은 다 용서가 돼도, 못생긴 것은 용서가 안 된다”는 식의 외모 지상주의, 내면의 가치보다 외면을 중시하고 ‘얼짱’ ‘몸짱’이면 다 된다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는 평범한 사람도 성형수술로 몰아가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뭐든지 쉽게 빨리 하려는 행태, 돈으로 시간과 노력을 사겠다는 태도도 성형수술이 급증하는 데 한몫했다. 이번 여름 휴가철에 가장 하고픈 성형수술이 무엇인가를 묻자, 여자 54%, 남자 43%가 “지방흡입”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운동처럼 자신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루기보다,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황금만능주의적 태도도 문제다.

이런 요인들과 예뻐지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성형중독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외모를 개선하기 위해 부작용이 나타날 정도로 끊임없이 성형수술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 ‘정신적 성형’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성형수술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다. 외모는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자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성형수술은 사치가 아니라 절박한 삶의 요구다. <표3>에서 우리 사회는 3차 산업이 극대화된 경제 발전의 후기 단계다. 3차 산업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서비스업이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외모를 중시하는 풍조가 확산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외모는 생산성에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영화나 모델 시장에서는 출중한 외모가 생산성과 임금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다. 판매 영업직에 종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얼굴을 만나면 아주 짧은 시간에 상대방의 신뢰도 능력 친밀도 매력 등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이 때 느낀 첫인상은 매우 결정적이다. 따라서 서비스업의 급증은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포장이 예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상품은 될 수 없다.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라도 저속하고 듣기 역겨운 말이나 믿을 수 없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포장(얼굴)이 거의 비슷비슷하다면 당사자 본인도 어색할 것이다. 개성 있는 자신의 얼굴을 사랑하자.

불교의 핵심 사상 중 ‘제행무상(諸行無常)’이 있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면 얼굴이 변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런 자연의 흐름을 거부하려는 것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 허망한 것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외면의 아름다움은 변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바다의 ‘거품’에서 출현했다는 표현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면적 아름다움은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외모지상주의는 잘못이라는 이성적 판단과 좀 더 예쁜 여자 혹은 잘생긴 남자와 사귀고 싶다는 감성적 욕망은 양립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윤상철 경희여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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