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어떻게 지켜 낸 NLL인데…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8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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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형 중사와 황도현 중사는 함정 중간과 후방의 포대 안에서 벌컨포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놓고 발사대를 가슴에 안은 채 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6월 30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 사령부. 전날 발발한 서해교전에서 귀환한 해군 장병들이 기자회견 도중 북한의 도발에 맞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한 동료 장병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의 증언은 당시 북한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우리 장병들이 영해 수호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를 잘 보여 준다. 북한 경비정은 기습공격 후 조타실 장비가 파괴돼 바다 위에서 제자리를 빙빙 도는 우리 고속정 357호를 끝까지 쫓아오며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357호는 전·사상자가 나뒹구는 생지옥이었다. 85mm 적 함포에 대파된 함교(지휘대) 위에서 피를 흘린 채 절명한 정장(艇長) 윤영하 소령에게 동료 장병이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 부정장인 이희완 대위는 다리에 파편을 맞아 살이 터진 채 쓰러져 있었다.
357호 장병들은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고속정이 침몰하는 순간까지 떠나지 않고 NLL을 지켜 냈다.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한 무력 도발을 일으킨 북한은 “남조선이 먼저 공격했다”고 억지를 부렸다.
이런 상황임에도 NLL은 ‘영토가 아닌 안보 개념’이니 ‘서해교전은 반성해 볼 문제’라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비롯해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NLL을 의제화하려는 정부 내 움직임은 서해교전의 실상을 덮으려는 ‘꼼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서해교전은 북한이 NLL 무력화로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산 증거’라고 많은 전문가는 보고 있다. 현 정부와 지난 정부에서 핵심 대북정보통을 지낸 예비역 장성들도 본보 인터뷰에서 NLL은 수도권 안보와 직결된 ‘해상 인계철선’인 만큼 정상회담에서 논의돼선 안 된다고 거듭 경고했다.
정부는 정략적인 ‘NLL 흔들기’를 당장 멈추고 북측에 서해교전 희생 장병과 유족들에 대한 사과부터 요구해야 하는 게 순서다. NLL 문제는 북측의 진정한 반성이 있고 군사적 신뢰가 확실하게 구축된 뒤 논의해도 늦지 않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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