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디지털 맹신하는 기업 고객을 좀 믿어 준다면…

  • 입력 2007년 8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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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어느 날 통신회사로부터 ‘음성자동응답장치(ARS)로 성금 2000원을 냈다’며 전화 요금이 청구됐다. 난 그런 적이 정말 없는데 억울하다.”

얼마 전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사는 67세의 할아버지가 기자에게 전화로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통신회사에 확인을 요청하니 ‘분명히 성금을 낸 것이 맞다’고 하더라. 내 말을 못 믿겠다는 얘기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더군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거주하는 50대 아주머니는 “한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10만 원을 인출했는데 7만 원밖에 나오지 않아 은행에 문의하니 ‘그럴 리 없다’며 오히려 나를 의심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관련 회사나 은행에 이런 일을 문의하면 대부분 “절대 그런 일이 없다. 그야말로 가능성 0%”라고 잘라 말합니다. 실제로 회사 측이 조사해 보면 고객이 잘못했거나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합니다.

첨단 기술로 만든 디지털 기기이니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자는 독자들의 이런 호소를 바탕으로 직접 취재해 본 적이 있지만 너무 전문적인 분야여서 그 진위를 객관적으로 밝혀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여러 방면으로 대처법을 알아봤습니다. 앞의 할아버지 전화 건은 누군가 전화선을 자른 뒤 ARS를 통해 돈을 갈취한 범죄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군요. 통신회사에 이런 가능성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은행의 ATM이 이상할 때는 즉시 거래를 중지하고 그 자리에서 은행에 신고한 뒤 기계를 열어 점검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기부 의사를 철회하는 절차를 거쳐 문제의 2000원을 돌려받는 해결책을 찾았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몇 주일 뒤 ATM이 토해 내지 않은 3만 원 중 일부를 돌려받는 선에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겐 해당 통신회사나 은행으로부터 받은 불신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더군요.

첨단 디지털 기술의 기계와 시스템이니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요? 그러나 첨단 기술에도 ‘만일의 상황’은 항상 존재하고 디지털 기계도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기업들이 기계를 믿는 만큼만 고객을 신뢰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디지털 기기가 혹시 우리를 속일지라도 기분이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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