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재완]신도시 후유증 최소화하려면

  • 입력 2007년 8월 2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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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의미의 신도시는 1944년 대(大)런던계획에서 비롯됐다. 런던의 과밀인구를 분산시키고 도시의 비대화를 방지하기 위해 런던의 그린벨트 외곽에 10개의 신도시를 계획적으로 건설하자는 내용이다.

근대 도시계획의 창시자라 불리는 에베니저 하워드의 전원도시 개념에서 힌트를 얻은 이 제안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여서 영국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정책화하면서 신도시는 여러 나라에서 주요한 공간 정책 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전국 27곳 동시 추진은 문제

신도시는 지속적인 인구 증가에 따른 대도시 내부의 높은 개발 압력을 인근 외곽 지역에서 계획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고안한 정책 수단이다. 영국 스웨덴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신도시가 개발 압력이 높은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분포한 점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수도권의 판교 동탄 송파를 비롯한 10개의 신도시가 이런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신도시는 균형개발촉진과 같은 특수한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도 일부 시도되고 있다. 낙후지역에 자족기능과 높은 수준의 주거 환경 여건을 갖춘 신도시를 계획적으로 개발함으로써 인구 유입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진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혁신도시 기업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대표적이다.

혁신도시는 수도권에서 이전할 175개 공공기관을 구심점으로 하여 비수도권 10개 지역에서 추진되는 중이며, 기업도시 역시 수도권 이전 기업을 대상으로 비수도권 6개 지역에서 대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포함할 경우 결과적으로 27개의 신도시가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추진되는 셈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유례가 없는 신도시 개발의 홍수이다.

수백조 원에 이르는 자금이 신도시 개발에 투입되고 있다. 높은 개발 수요를 바탕으로 조성하는 수도권 인근의 신도시와 달리 개발 수요가 별로 없는 낙후지역을 대상으로 건설되는 신도시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의 사례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수요가 취약한 낙후지역의 신도시는 불편한 접근성과 낮은 수요로 미분양이 속출하고, 필요한 편의시설 및 공공시설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주거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 목표 인구 미달로 여러 시설이 유휴화되어 방치되고, 젊은이가 앞 다퉈 신도시를 이탈하면서 신도시의 슬럼화 현상이 나타난다. 신도시의 낮은 인기로 인해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불가능해지고 슬럼화 현상은 방치된 채로 진행된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될 경우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되어 신도시가 지역사회의 거대한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자원의 낭비이다.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정치적인 결정으로 조성된 일부 지방공항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해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혁신도시 등 개발 일정 재검토를

물리적인 형태의 신도시를 만드는 일은 정부의 힘으로 가능하지만 신도시를 채우고 도시답게 유지하는 것은 결국 시장의 힘이다. 시장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정책형 신도시개발은 결과적으로 정책 입안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도시는 소수 정책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경제원리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다수 시민의 발걸음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과도한 정책형 신도시 개발에 따른 예견되는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신도시 개발의 전체적인 일정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치 일정에 쫓겨 무리할 정도로 강력히 추진하는 혁신도시나 기업도시의 경우 이런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허재완 중앙대 도시 및 지역 계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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