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여우와 두루미

  • 입력 2007년 8월 2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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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은 어제부터 인터넷 선거인단 본인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9명의 예비경선 후보 중 5명을 골라내는 ‘컷오프(cut-off) 경선’ 여론조사에 참여하겠다는 선거인단이 24일 50만 명을 넘어서면서 특정 후보 진영의 조직적인 ‘대리 접수’ 시비가 일자 부랴부랴 본인인증제를 도입한 것이다. 문제는 이 선거인단이 9월 15일 울산·제주를 시작으로 10월 14일 서울에서 끝나는 본(本)경선의 선거인단을 겸한다는 점이다.

▷이해찬, 유시민 씨 같은 친노(親盧)그룹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친노 그룹은 손학규, 정동영 씨가 ‘본경선 선거인단 200만 명 이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규모 인터넷 대리접수를 ‘기획’했다고 의심한다. 선거인단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여론조사에서 앞선 손, 정 씨가 유리하다는 얘기다. 반면 ‘참여정부평가포럼’이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처럼 소수의 열성 지지층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 유 씨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게 사실이다.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偶話)를 연상시킨다. 같은 우유라도 여우는 접시처럼 넓은 그릇(광범위한 국민지지도)에 담긴 게 좋고, 반대로 두루미는 좁은 호리병(열성 지지층)이 유리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이솝 우화는 그랬지만 ‘데카르트가 다시 쓰는 라퐁텐 우화’는 다르다. 여우가 가로 100cm, 세로 10cm, 높이 1cm의 그릇을, 두루미는 4×5×50cm 그릇을 들고 나와 제 잇속만 챙기자 고양이가 가로 세로 높이 각 10cm인 그릇을 내 주며 여우와 두루미의 속 좁음을 나무랐다는 우화다. 세 그릇 모두 우유의 양은 1L다.

▷민주신당은 본경선에서 당원, 대의원, 일반국민의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다. 경선 와중에 남북 정상회담(10월 4∼6일)까지 잡혀 있으니 어떻게든 바람몰이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믿느니 오직 바람뿐이다. 바람잡이들을 동원해 눈을 속이는 길거리 박보장기판보다 나을 것도 없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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