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DJ 발언에 대해 “저희에 대해 하신 말씀도 아니고, 청와대가 의견을 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직접 노 대통령을 거명하지 않았으니 대응하지 않겠다며 피해 가려는 것인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 중대성을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태도다.
노 정권은 과거사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들여 100년 전의 역사까지 들춰 냈다. 과거사에 대해 그럴진대 당대사(當代史), 즉 이 정부와 관련된 가장 가까운 현대사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에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더구나 대북 비밀 송금과 국정원 도청은 노 정권 스스로 잘못됐다고 밝히며 칼을 댄 사안이고, 이미 사법부 판단까지 내려졌다. 그런데도 DJ는 이를 깔아뭉개고 옳고 그름을 뒤바꾸려고 기도(企圖)하고 있다.
DJ가 열린우리당 전(前)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사과 얘기를 꺼냈지만 사실은 범여권 대선주자들과 노 대통령을 향한 요구다. 대선을 앞두고 호남에 대한 영향력을 무기 삼아 자신의 과오를 덮고 치부(恥部)를 미화하려는 것이다. 호남 표(票)를 의식한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DJ의 압박에 약한 것은 그렇다 쳐도 노 대통령이 DJ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그간 범여권 대통합 등 몇몇 정치적 사안에서 DJ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사법부에서 유죄 판결이 난 대북 비밀송금 및 도청 수사의 정당성과 관련한 문제이다. DJ의 사과 요구에 침묵하는 것은 백기(白旗) 항복이나 다름없다. 노 대통령이 DJ를 향해 침묵으로 ‘맞습니다, 맞고요’ 하고 있다면 참으로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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