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 대통령, DJ의 당대史 왜곡에 白旗 들 건가

  • 입력 2007년 8월 26일 2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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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여권 내부의 갈등을 무릅쓰고 김대중(DJ) 정권하에서 저질러진 남북 정상회담용 대북(對北) 비밀송금, 국가정보원 도청을 밝혀낸 것은 평가받을 일이다. 감쪽같이 묻힐 뻔한 역사의 진실을 국민 앞에 들춰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 “사과하라”고 호통 치는 DJ에게 단호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24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DJ 발언에 대해 “저희에 대해 하신 말씀도 아니고, 청와대가 의견을 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직접 노 대통령을 거명하지 않았으니 대응하지 않겠다며 피해 가려는 것인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 중대성을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태도다.

노 정권은 과거사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들여 100년 전의 역사까지 들춰 냈다. 과거사에 대해 그럴진대 당대사(當代史), 즉 이 정부와 관련된 가장 가까운 현대사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에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더구나 대북 비밀 송금과 국정원 도청은 노 정권 스스로 잘못됐다고 밝히며 칼을 댄 사안이고, 이미 사법부 판단까지 내려졌다. 그런데도 DJ는 이를 깔아뭉개고 옳고 그름을 뒤바꾸려고 기도(企圖)하고 있다.

DJ가 열린우리당 전(前)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사과 얘기를 꺼냈지만 사실은 범여권 대선주자들과 노 대통령을 향한 요구다. 대선을 앞두고 호남에 대한 영향력을 무기 삼아 자신의 과오를 덮고 치부(恥部)를 미화하려는 것이다. 호남 표(票)를 의식한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DJ의 압박에 약한 것은 그렇다 쳐도 노 대통령이 DJ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그간 범여권 대통합 등 몇몇 정치적 사안에서 DJ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사법부에서 유죄 판결이 난 대북 비밀송금 및 도청 수사의 정당성과 관련한 문제이다. DJ의 사과 요구에 침묵하는 것은 백기(白旗) 항복이나 다름없다. 노 대통령이 DJ를 향해 침묵으로 ‘맞습니다, 맞고요’ 하고 있다면 참으로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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