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 입력 2007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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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이세 히데코 글 그림·김정화 옮김/56쪽·1만 원·청어람미디어(5세∼초등 2년)

이야기는 프랑스 파리의 어느 날 아침에 시작된다. 수채화로 그려진 파리의 집 풍경은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난다.

“어떡하지, 내 도감이….”

소녀가 아끼던 도감의 낱장들이 주르르 흐른다. 책이 망가졌다. 그림 속 아이는 표정이 없지만, 애잔한 분위기의 그림과 안타까운 한마디 때문에 아이의 심정은 독자에게 성큼 전달된다.

더 멋진 식물도감도 많지만 소녀는 새 책을 사고 싶지 않다. 갖고 있던 책에 정이 들어서다. 책가게 아저씨가 말한다. “그렇게 중요한 책이면 를리외르를 찾아가 보려무나.”

그림 하나에 한두 줄 문장. 한 장 한 장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색깔이 조금씩 번진 수채화 그림 속에서, 파리의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를리외르 아저씨를 찾는 소녀와, 자신의 가게로 출근하는 를리외르 아저씨의 모습이 번갈아 보인다. 가게 앞에서 만난 두 사람.

책이 이리 되도록 많이도 봤구나. 전 나무가 좋아요. 이 책엔 나무에 대한 건 뭐든 다 나와 있어요. 그럼 먼저 책을 낱낱이 뜯어내자꾸나. 아저씨, 아카시아나무 좋아해요? 이 표지는 제 몫은 다한 것 같으니 새로 꿰매자꾸나. 아카시아꿀은요, 참 향긋해요.

따옴표가 없는 대화는 물 흐르듯 읽힌다. 동문서답하는 듯하지만 어색하기는커녕 사랑스럽다. 를리외르 아저씨는 책을 실로 땀땀이 꿰맨다. 풀칠을 하고 말린다. 책 등을 망치로 두드려서 둥글려 줘야 책장이 잘 넘어간다. 찬찬히 책을 매만지는 아저씨의 모습은 책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책이란 얼마나 무게 있는 것인지! 작가는 를리외르 아저씨를 통해 책 한 권의 소중함을, 오롯한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책을 만지는 를리외르 아저씨의 손은 나무옹이 같다. 실의 당김도, 가죽의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선택도 모두 그의 손에 기억돼 있다. 책에는 지식과 이야기와 역사가 빼곡히 들어 있으며, 이것들을 잊지 않도록 전해주는 게 를리외르 아저씨의 일이다. 이름은 남기지 않아도 좋지만,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라고 아저씨의 스승이었던 아버지는 당부했다.

를리외르(relieur)는 프랑스어로 ‘제본’이라는 뜻이다. 책을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튼튼하고 아름답게 보수해 주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프랑스에는 1500여 명의 를리외르가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예술제본 전문공방 ‘렉또베르쏘’ 등에서 를리외르를 양성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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