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한국 공포소설가 9인의 대표작 단편을 엮은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황금가지)은 주목할 만하다. ‘인간 본성에 내재한 파괴적 욕망을 들춰 보고 싶다’는 이종호의 ‘폭설’, “공포는 엔터테인먼트이다”라고 선언한 안영준의 ‘레드 크리스마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김종일의 ‘벽’, 첫 페이지를 펼친 독자가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공포소설을 쓰겠다는 김준영의 ‘통증’, “부패한 세상을 가장 잘 은유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공포소설”이라는 황희의 ‘벽 곰팡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동시대 한국 공포소설에는 몇 가지 법칙성이 있다. 먼저 주인공은 이름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힘겹게 살아가는 중산층이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는 주로 허름한 시영아파트이며 TV, 카메라, 캠코더,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들이 공포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한국식 공포소설은 공포의 동기를 사회에서 찾는다. 가령 학교, 병원, 아파트 등 공공장소가 주요 무대이다. 원한이 풀려도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이 뒤끝 나쁜 일본식 공포소설, 불행한 개인사를 통해서 창조된 사이코 패스가 주인공인 할리우드의 권선징악식 공포소설과는 변별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혈이 낭자한 반면 공포감 자체는 반감되는 점이다. 구미호처럼 애틋하면서도 매력적인 귀신은 사라지고 잔인한 살해 수법만 진화한 느낌이다.
공포란 실체가 없다. 낯선 타자에 대해서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느낄 때, 우리는 공포를 경험한다. 20세기 내내 한국의 공포소설은 근현대의 산물들을 두려워했다. 전차, 무의식, 휴대전화, 소음 등 새로운 모든 것은 괴물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 영어, 곰팡이, 벽도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괴물이 아니라 공포라는 보이지 않는 기제이다. 21세기의 한국 공포소설이 그 정곡을 찔러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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