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이여 빛을… ‘성녀’의 번민

  • 입력 2007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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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꼭 안은 모습처럼 평생을 가진 것 없고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았던 성녀 테레사 수녀. 신의 이름으로 큰 뜻을 폈던 그의 가슴에도 고통, 외로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등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편지들이 발견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아이를 꼭 안은 모습처럼 평생을 가진 것 없고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았던 성녀 테레사 수녀. 신의 이름으로 큰 뜻을 폈던 그의 가슴에도 고통, 외로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등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편지들이 발견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테레사 수녀 내달 5일 10주기… 서한집 곧 발간

“어둠 냉담 공허가 너무도 커

저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나의 선교는 위선” 표현도

“주께서 제 안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둠, 냉담, 공허의 현실이 너무도 커서 제 영혼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평생을 빈자와 병자를 돌보며 사랑을 실천한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쓴 편지의 일부다. 믿음을 전하는 수녀로서 겪는 신앙의 번뇌와 함께 위기마저 느껴진다.

다음 달 5일 10주기를 맞는 테레사 수녀의 편지 40여 편을 모은 책 ‘마더 테레사: 다가와 저의 빛이 되어 주소서(Mother Teresa: Come Be My Light)’가 곧 발간된다. 미국 CBS방송, 시사주간 타임 등 외신은 이 책 속에는 신의 존재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이 책의 편저자는 테레사 수녀의 시복(諡福) 절차를 담당했던 브라이언 콜로디에이추크 신부. 편지 내용의 일부는 2001년 공개됐고 몇 편은 2003년 책으로 짧게 소개돼 당시에도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테레사 수녀가 40여 년간 신앙의 반려자인 몇몇 신부에게 보낸 이들 편지에는 어둠, 고통, 외로움 등의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CBS는 ‘나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주께서 계신다면 부디 용서해 주소서’ 등의 구절에서 신앙심을 잃고 고민한 흔적을 엿보게 한다고 전했다.

1979년 마이클 반 데어 피트 신부에게 보낸 글에는 “저는 너무 큰 침묵과 공허함으로 보아도 보이지가 않고 들어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기도를 할 때) 혀는 움직이지만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씌어 있다.

1959년 로런스 파카키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는 절규하듯 “내 영혼에 왜 이토록 많은 고통과 어둠이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적기도 했다. 테레사 수녀는 또 “저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까? 만약 주께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영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영혼이 없다면, 예수님이시여, 당신도 진실이 아닐 것입니다”라며 신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테레사 수녀는 이러한 번뇌로 한동안 기도를 하지 않은 적도 있다고 CBS는 전했다. 테레사 수녀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지옥에 비유하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아울러 테레사 수녀의 자애롭고 따뜻한 미소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전했지만 정작 자신은 “웃음은 모든 것을 감추려는 가면”이라고 표현했다고 타임은 전했다. 그는 또 선교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리켜 “위선”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타임은 테레사 수녀가 신앙의 위기를 부끄러워하며 편지들이 폐기처분되기를 원했지만 콜로디에이추크 신부 등은 오히려 반평생에 가까운 그의 번뇌를 성스러운 선물로 본다고 전했다. 끊임없는 고민과 의문이 이를 극복하고 큰 업적을 이루게 만든 발판이 됐다는 것. CBS는 그러나 테레사 수녀가 죽는 순간까지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끝내 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바티칸은 올해 안에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할 계획이라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4일 보도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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