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 잘 있으니 아프지 마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8월 24일 03시 00분



“건강히 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잘 먹고 편히 있어요. 아프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한국인들의 현지 가이드를 맡았던 이지영(36) 씨가 자필로 쓴 쪽지가 23일 공개됐다. 이 쪽지는 이 씨와 함께 있다 먼저 풀려난 김경자(37), 김지나(32) 씨가 석방 직전 전달받은 것으로 이날 오후 이 씨 가족에게 전달됐다.

이 씨의 작은오빠 종환 씨는 “탈레반이 두 명을 석방하면서 내 동생에게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적으라고 해 쓴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아랍어 글귀가 인쇄된 흰색 바탕의 종이쪽지에 간결한 글씨체로 5줄의 ‘편지’를 짧게 썼다.

그동안 쪽지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를 전해 받은 이 씨의 어머니 남상순(66) 씨는 북받치는 그리움과 슬픔을 참지 못하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남 씨는 “지영이의 필적이 맞다”며 “이것을 받는 순간 지영이를 만난 것 같았다. 자기도 힘들 텐데 엄마 몸 아프지 말라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씨는 지난해 말 아프간으로 출국해 현지에서 교육 및 의료 봉사활동을 하다 이번에 납치된 봉사단의 현지 인솔자 중 한 명으로 합류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국내 언론을 통해 육성이 공개된 바 있다.

한편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탈레반에 억류됐다 먼저 풀려난 뒤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입원 중인 김경자, 김지나 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이날 오후 8시(한국 시간) 영어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했다.

알자지라는 이 씨가 이들에게 석방 기회를 양보했다고 보도한 뒤 “탈레반은 이 씨가 가족을 위로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는 것을 허용했다”고 전했다.

두 김 씨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환자복 차림으로 나란히 나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은 인질 19명의 석방을 호소했다.

김지나 씨는 “우리가 먼저 풀려나 가족과 함께 있어서 기뻐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은 사람들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제발 우리 동료를 하루빨리 풀어 달라”고 말했다.

김경자 씨도 “풀려났다는 기쁨보다는 남은 인질 19명 생각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듯하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외부와의 접촉이 일절 차단된 이들에게 알자지라와의 인터뷰가 허용된 데 대해 “석방된 2명과 가족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자신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남은 인질 19명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