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영업’ 냉혹한 코트에 선 월드리베로

  • 입력 2007년 8월 2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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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스파이크를 어느새 몸을 날려 받아낸다. 아웃될 것 같은 공도 척척 걷어낸다.

2006∼2007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2연패를 이끈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월드 리베로’ 이호(34·사진).

코트를 누비던 그가 운동복 대신 양복을 입고 새 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현 직함은 현대캐피탈 경기 수원시 인계동지점 중고차 할부팀 대리.

이호는 오전 7시 반에 출근해 자동차 관련법과 중고차 종류, 금리 계산, 컴퓨터 엑셀 사용법을 배운다. 외부에 나가 자동차 영업도 한다. 오후 6시면 업무가 끝나지만 뒷정리를 하고 나면 오후 8시가 훌쩍 넘곤 한다.

“모든 게 생소하죠. 운동이 육체적으로 힘들다면 샐러리맨은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더군요. 하지만 직장 동료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요. 새로운 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는 선수로 더 뛰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아픈 데도 거의 없었고 체력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팀 정원이 16명으로 제한돼 있어 후배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

“25년 배구 인생에 후회는 없어요. 화려한 공격수는 아니지만 팀의 주축 수비수로 승리에 기여했다고 자부하니까요.”

전주 삼례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이호는 수비 전문인 리베로 포지션이 도입된 1997년 월드리그부터 뛰어난 순발력과 정확한 위치 선정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해 국가대표가 됐고 1999년 대륙별 챔피언이 참가하는 월드컵대회에서 수비상과 서브 리시브상을 받았다.

이호는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1995년부터 올해까지 현대자동차와 현대캐피탈에서 붙박이 선수로 뛰었다. 현대캐피탈이 이호를 이례적으로 계열사 경력사원으로 채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호에게 지도자 욕심은 없느냐고 묻자 “지금은 새 직장에서 좋은 실적을 내는 게 우선”이라면서도 “기회가 되면 코트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이호는 12월 2007∼2008 리그 때 공식 은퇴식을 갖는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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