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생각? 느낌? 보는 거야!

  • 입력 2007년 8월 2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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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우리 시대의 재미

시골에서 갓 올라온 듯한 순박한 외모의 소녀가 극장에 왔다. 매표소 앞에 멈춰선 소녀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우아한 발레나 섹시 웨이브가 아닌 그야말로 막춤을.

최근 인기를 모은 이동통신회사 TV 광고의 한 장면이다. 많은 시청자가 소녀의 엉뚱한 행동에 대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재미’란 말을 흔히 쓴다.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재미의 개념은 조금씩 달라져 왔다. 22∼24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에서는 심리학자들이 모여 재미의 의미와 그 변화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 특별한 생각 없이 얻게 되는 유쾌함

한창 ‘맷돌춤’이 유행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자라목처럼 돌리면서 양손을 가슴 높이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우스꽝스러운 춤이다. 이 춤은 휴대전화 TV 광고에 처음 등장했다.

막춤과 맷돌춤을 본 시청자들은 깔깔대며 웃는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니 그저 보고 즐기면 된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일면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요즘 사람들은 우스운 표정이나 동작, 외모 등을 소재로 한 가벼운 광고를 재미있어 한다”며 “이런 재미는 뇌에서 특별한 사고과정이 일어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유명인의 말이나 행동을 풍자하거나 무릎을 탁 칠 만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소재로 한 광고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뇌에서 정보처리 과정이 일어나야 한다. 그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생각을 통해 읽어 내야 한다는 얘기다.

성 교수는 “최근 광고는 가벼운 재미를 유발하는 쪽으로 바뀌는 추세”라며 “무거움보다 가벼움을 선호하는 사회적 추세가 반영된 현상이지만, 광고 효과가 보장되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보는 순간은 재미있어도 정작 어떤 제품의 광고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 “뭐 재미있는 일 있어?” 답은 ‘볼 것’

가벼운 소재로 재미를 선사하는 광고는 대부분 시청자에게 시각적인 자극을 준다.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김정운 교수는 “본격적으로 시각적 자극에 의해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미디어가 급속히 발달한 20세기 후반부터”라고 설명했다.

“뭐 재미있는 일 있었어?”라고 물으면 많은 경우 ‘본 것’ 위주로 대답하곤 한다. 멋진 공연을 관람했다든지, 여행 가서 좋은 구경을 했다든지, 전시회에 다녀왔다든지 말이다.

미디어 기술의 발달은 이런 시각적 재미의 경험을 영상으로 옮겨 놓았다. TV나 동영상, 영화 덕분에 한자리에서 여러 장면을 계속해서 볼 수 있게 됐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다양한 시선의 영상들을 찍어 빠르게 잇는 영화 편집기술(몽타주 기법)은 시각적 경험을 극대화해 재미를 배가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축구에 관심이 없던 여성들을 TV 화면 앞에 불러 모은 것도 바로 영상기술”이라고 분석했다. 오빠나 남동생 같은 선수들이 골 하나에 울고 웃는 표정 변화뿐 아니라 얼굴에 맺힌 땀방울 하나까지 그대로 화면에 비치면서 여성들의 감정이 움직이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 공부는 왜 광고보다 재미가 없을까

심리학자들이 재미를 연구하는 이유는 교육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광고나 영화에서 얻는 재미는 심리학에서 ‘상황적 재미’로 분류된다. 일시적인 자극으로 짧은 시간 동안 느낀다.

공부하면서 느끼는 재미는 다르다. 상황적 재미가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가치와 연결돼야 얻을 수 있다. 이는 ‘개인적 재미’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를 풀거나 과학 실험에 성공한 순간 학생들은 재미를 느낀다(상황적 재미).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면 더 알고 싶어지고 아예 유명한 수학자나 과학자가 되겠다는 결심도 생긴다. 이때 비로소 공부가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개인적 재미).

고려대 교육학과 김성일 교수는 “학교 공부가 광고보다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은 상황적 재미를 개인적 재미로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학습을 개인적 재미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뇌에서 논리나 추론 같은 고도의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을 많이 쓰도록 이끌어 주는 게 중요하다”며 “가르칠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설명하는 것보다 추리소설처럼 문제를 던져 주고 스스로 추론해서 해결하도록 학습과정을 구성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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