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 고치러 갔다 病 얻어서 온다… 병원 감염

  • 입력 2007년 8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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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72) 씨는 올해 초 뇌출혈로 응급수술을 받은 뒤 서울의 큰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치료를 받으면서 한때 증상이 많이 좋아졌지만 입원 4일 만에 갑자기 폐렴으로 사망했다. 폐렴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인공호흡기 오염으로 항생제 내성균인 ‘메티실린내성포도상구균(MRSA)’이 검출됐다.

김 씨처럼 병을 고치러 병원에 왔다가 되레 병을 얻게 되는 ‘병원 내 감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생건수는 병원 규모가 클수록 많지만 감염률은 중급 이하 병원에서 높았다.

질병관리본부는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에 의뢰해 지난해 7∼9월 400병상 이상인 전국 174개 종합병원 가운데 44개 병원 중환자실의 병원 내 감염 실태를 조사한 결과 846건이 발생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는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48시간 이후에 발생한 요로감염, 혈류감염, 폐렴 발생률을 조사한 것으로 3개월간 하루에 9.2건의 병원 내 감염이 발생한 셈이다.

▽큰 병원일수록 혈류감염 많아=감염 종류별로 보면 열, 잦은 소변, 복통을 수반하는 요로감염이 407건으로 가장 많았고, 열과 패혈증 등이 나타나는 혈류감염 204건, 폐렴 235건 등이다.

환자 입원 일수에 따른 전체 병원의 병원감염률은 8.13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환자실에 1000일 입원하는 동안 총 8건 정도 감염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요로감염 건수가 다른 감염에 비해 배 정도 많지만 중환자실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혈류감염과 폐렴으로 각각 패혈증, 호흡부전 등을 일으켜 사망할 수 있다.

특히 혈류감염은 900병상 이상의 대형 병원에서 95건, 700∼899병상에서는 78건, 400∼699병상에서는 31건 등 큰 병원일수록 발생 건수가 많았다.

▽의료기구 감염이 원인=혈류감염 204건 중 182건(89.2%)은 중심정맥카테터와 관련된 것이었다. 중심정맥카테터는 환자에게 필요한 영양분, 약물 주입 또는 혈압 측정 등이 용이하도록 쇄골 밑 큰 정맥에 꽂아 두는 관(管)으로 시술 과정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요로감염의 경우도 407건 중 397건(97.5%)이 환자에게서 인위적으로 오줌을 빼내는 가는 관인 요로카테터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렴도 235건 중 161건(68.5%)은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에게서 발생했다.

기구에 의한 혈류감염과 요로감염은 병원 규모에 따른 감염률의 차이가 없었지만 폐렴은 400∼699병상의 중소형 병원 감염률(6.03)이 900병상 이상 대형 병원(3.1)보다 배 정도 많았다. 대형 병원은 그나마 의료시설이 잘 갖춰지고 의료진 교육이 상대적으로 잘돼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또 요로감염, 혈류감염, 폐렴은 뇌수술을 많이 하는 신경외과 중환자실이 다른 중환자실보다 기구 사용으로 인한 감염률이 높았다.

최태열 한양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신경외과는 뇌중풍 뇌종양 등으로 장기 입원하거나 위독한 환자가 많아 기구 사용으로 인한 감염률도 상대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의료진도 위생 불감증=중환자실 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주 접촉하는 의료진이나 보호자에게서 감염되지 않도록 손을 철저히 씻어야 한다. 그러나 의사들도 급하다는 이유로 평상시 가운을 입고 중환자실에 들어가거나 면회 환자가 신발을 그대로 신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최근 손을 소독해야 중환자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감염관리 의사 및 전문 간호사가 부족한 데다 대부분의 일회용 의료기구가 보험 적용이 안 돼 병원 측이 오래 사용하거나 반복 사용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 중급 병원 간호사는 “요로카테터는 5일에 한 번 교체해야 하지만 통상 2주 정도 쓴다”고 말했다.

배현주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 총무는 “미국에서는 평균 250병상당 1명의 감염관리 의료진이 배치되지만 우리나라는 500병상에 1명, 심한 경우 800병상에 1명인 대학병원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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