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찬란한 여름밤 20선]<8>내 서랍 속의 우주

  • 입력 2007년 8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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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속에 있는 화학원소 중 많은 것이 초신성 폭발에서 생겨난 것이며 이 원소들은 우주로 흩뿌려졌다. 여기서부터 다시 별이 생겨난다. 마치 46억 년 전에 우리의 태양이 그 행성들과 함께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본문 중에서》

한껏 달아오른 태양빛이 더운 바람을 이끌고 어슬렁거린다. 무더위에 빠진 집을 나와 가까운 시장에 들렀다. 올해 김장에 쓸 무 씨앗과 배추 모종을 사서 텃밭으로 향했다. 서쪽 하늘로 옮겨간 태양은 여전히 강한 햇살을 내리비추고 있었다. 초겨울의 시원한 김장김치를 떠올리며 밭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땀으로 옷을 적셨다. 못이기는 척하고 밭두렁 옆 소나무 그늘 아래로 숨어들었다. 그늘에는 시원한 바람이 찰랑찰랑 넘나들었다. 돗자리에 놓아두었던 책 ‘내 서랍 속의 우주’에 눈길이 닿았다.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점점 우주이야기의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 등 여러 천문학자와 천문학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여느 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하고 진기한 이야기가 숲 속 바람처럼 흘러 나왔다. 과거로, 미래로 천문학 이야기의 마당을 돌아다녔다.

달에 유성체가 부딪히면서 나타나는 섬광 이야기는 1999년 11월에 있었던 사자자리 유성우와 연결되었다. 이 유성우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보였다. 시간당 수백 개의 별똥별을 뿌렸다.

일식에 얽힌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다루고 있다. 월식에 비해 훨씬 드물게 나타나는 개기일식은 무척이나 보기 어렵다.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식을 보고 싶은 마음이 서너 배쯤 더 커질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개기일식을 보려면 강산이 세 번가량 바뀌어야 한다. 2035년 평양 가까이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난다.

책의 말미에는 빅뱅에 대해 빠지기 쉬운 착각과 오해를 다루고 있다. 친구들과의 가벼운 대화에서 빅뱅을 자주 인용한 적이 있다면 이 부분을 꼭 참고하기를 권한다. 빅뱅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이 혹시 착각은 아니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무렵 어둑해진 하늘에 초승달이 걸렸다. 서둘러 밭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오늘 하루를 정리할 겸 창문을 열고 별을 만났다. 하늘 한가운데 높은 곳에 직녀별이 빛나고 있었다. 북두칠성도 반갑게 고개를 내밀었다. 여름밤의 별을 헤아려 하나씩 눈에 담았다. 오늘 나무그늘 아래에서 여름 더위를 잊게 해준 책은 서랍 속에 잘 넣어 두어야겠다.

아차! 북두칠성 찾는 법을 빠뜨릴 뻔했다. 저녁 아홉 시쯤 서북쪽 하늘을 보면 된다. 국자 모양의 일곱별이 빛나고 있다. 북두칠성을 더 쉽게 찾고, 또 늘 간직할 수 있는 기막힌 방법도 있다. 이미 정말 많은 사람이 북두칠성을 지니고 있다. 새로 나온 1만 원권의 뒷면에 우리 고유의 과학문화유산인 우리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북두칠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에피소드로 나온 10마르크 지폐 속의 괴팅겐 천문대를 찾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것 같다.

내 지갑 속에 별이, 그리고 우주가 그려져 있다.

김지현 한국과학문화재단 ‘과학기술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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