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총파업’ 20년…권용목 신노련 대표에 듣는다

  • 입력 2007년 8월 22일 20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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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목(50) 뉴라이트 신노동연합 상임대표에게 올해 여름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1987년 여름 전국의 노동현장을 뒤흔들었던 '총파업 사태'가 올해 20주년을 맞기 때문이다. 당시 권 대표는 현대엔진(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을 맡아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총파업 사태 현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후 그는 한국의 강경 노동운동을 주도하며 1990년대 중반까지 4차례나 구속됐다. 1995년에는 민주노총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다.

하지만 권 대표는 이듬해 민주노총의 노선에 회의를 갖고 노동계를 떠났다가 지난해 '새로운 노동운동'의 기치를 들고 돌아왔다.

22일 만난 그는 "약자인 노동자들이 뭉쳐 자본가에 대항한다는 20년 전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노조가 회사와 손을 잡고 기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는 설명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에 문제가 있는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요즘 민주노총의 요구와 주장을 보면 '신자유주의 철폐'라는 구호가 제일 먼저 나온다. 20년 전의 '독점재벌 철폐'라는 구호에서 대상만 바꾼 것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를 구조적 모순의 시각으로만 보면 자본가와 친자본 정부를 타도하는 투쟁이라는 결론 밖에 나올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인 시각으로 노동 시장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답은 '노조와 노동자가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더욱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직접 이끌었던 민주노총이나 현대 계열 노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답답해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목숨 걸고' 만들었던 현대 계열사 노조들이 이제는 '귀족 노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강성인 현대자동차 노조가 대표적인 무분규 사업장인 현대중공업의 노조를 '어용'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별 문제없이 일 잘하고 돈도 많이 번다. 현대차는 지금 위기론이 나오고 있지만 현대중은 세계 일류기업이다. 흔히 노조의 임무가 '사회변혁'이라고 착각하는데 노동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노조의 목표가 돼야 한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의 노동계는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강경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비정규직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아픔에 동감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봐야한다. 이 부분은 법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일률적으로 '100인 이상 사업장은 이렇게 하라'고 규정하지만 그 중에는 문 닫기 직전의 기업도 있는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나.

기업이 있는 지역의 사회조정협의체를 중심으로, 노조 상급단체도 갈등 조정 능력을 키워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노조 때문에 공장 문 닫는다'며 하소연하는 기업인들도 많다. 그런데 그걸 옆에서 부추기는 세력이 문제다."

―10년 동안 노동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뒤 느낀 것은 무엇인가.

"노동 현장을 돌아보고 느낀 것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의 뿌리는 결국 '일자리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지만 근원은 일자리 문제에 있다. 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폐업을 하거나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가보면 근로자들 스스로가 어느 업종 할 것 없이 '앞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1987년 노동자의 욕구가 분출되고 노조 설립이 이어졌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단호한 목소리로) 역사적 필연이었다. 기업이 노동자를 억누르고 저임금으로 경쟁력을 지키는 것이 한계에 이른 상황이었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처우와 생활수준을 높여줘야 했다. 당시에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마찬가지로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다. 지금도 그 때 노조를 만들었던 것이 옳았고, 기업과 한국 사회의 발전에도 도움이 됐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당시와 20년 후인 오늘의 노동 현장의 상황을 비교하면…

"그때는 현대 그룹 계열사 근로자들조차 공장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구멍가게를 여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대졸자가 학력을 속이고 대기업 생산직으로 들어가려고 할 정도로 처우가 좋아졌다. 20년 전 노조는 순수했다. 위원장 월급도 일반 조합원들과 비슷했다. 지금은 일부 대기업 노조가 이권과 돈에 너무 노출돼 있다. 일부 노조의 비리를 다 파헤치면 경악할 수준일지도 모른다."

―옛 동지들로부터 "변했다"는 비판을 받지는 않는지….

"(잠시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한 뒤) 나는 변하지 않았다. 20년 전에도 '현실적인 눈'을 갖고 있었다. 민주노총 시절 새로운 사업장에 노조가 만들어지면 힘을 얻고 조직력을 다지기 위해 총파업부터 하곤 했지만 나는 그때도 그런 종류의 파업은 반대했다.

그러자 정치투쟁을 하지 않는다고 어용, 경제주의자, 조합주의자, 기회주의자로 몰렸다. 1987년 현대 노조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을 몰랐다. 당시 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신뢰받는 동료들이었지 불만에 가득 찬 투사가 아니었다. 변한 것은 노동운동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 목표나 활동 계획은.

"2010년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되면 새로 생기는 노조들이 가입할 상급단체가 필요할 것이다." 그가 '제 3노총'을 준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기현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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